1~7월 아파트 입주 물량 작년보다 34% 감소서울 재개발ㆍ재건축 1만6000가구 이주 몰려 가을 최악 사태 올수도"정부 특단 대책 세워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L아파트(140㎡형)에 전세를 사는 김모(43)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9월 초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전셋값을 1억2,000만원이나 올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2년 전 자녀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일산신도시 집을 정리하고 교육 여건이 좋다는 양천구로 옮겨왔다. 그는 "딸 아이가 내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때문에 이사는 사실상 어렵다"며 "대출을 받을지, 아니면 부족한 금액을 월세로 돌려야 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금융시장 불안에 입주물량 부족까지 겹쳐 물가 급등에 시달리는 서민 가계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정부는 4월 "재개발ㆍ재건축 주민 이주시기를 조절해 전세대란을 막겠다"고 발표한 뒤로는 별 다른 대책 없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최악의 전세 파동이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5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7월 아파트 입주물량은 11만1,000여 가구로 지난해의 3분의 2 수준(34.2% 감소)에 그쳤다. 2000년 이후 1~7월 평균 입주물량과 비교해도 27.1%나 줄어든 수치다. 재건축 이주와 함께 신혼부부, 여름방학 학군 수요 등이 몰리면서 전세물건 품귀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어 급격한 전셋값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 자고 나면 치솟는 전셋값은 이미 서민가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국민은행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2009년 1월 38.2%에서 지난달 48.0%까지 치솟았다. 부동산 시장이 정점이었던 2005년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가 조사한 지난주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0.18%)도 전주에 비해 배나 올랐다. 이처럼 전셋값이 쉼 없이 오르다 보니 올 들어 7월 말까지 국민주택기금에서 지원한 전세자금 대출 규모(3조5,486억원)도 작년 동기 대비 21% 급증했다.
닥터아파트 측은 "최근 미국발 금융쇼크로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금융권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매매보다는 전세를 유지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신규 세입자 문의가 여전하고 재계약 사례도 꾸준해 전세 품귀 현상은 한층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이 올 하반기 서울의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으로 1만6,000여 가구가 이주할 예정이기 때문에 전세시장 불안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도 "가을 이사철 전세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고 밝혀 전세시장 불안을 우려하는 시장의 목소리에는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전세공급 대책은 고사하고 서민들의 전세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치권과 논의했던 전ㆍ월세 상한제 도입을 무산시키는 등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재개발ㆍ재건축 이주 수요 분산 ▦저리 전세자금 지원 등의 임시대책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관련 법령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전세시장 진정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매매시장이 활성화하지 않을 경우 가을 이사철에 또 다시 심각한 전세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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