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들고 하는 일도 잘 안되네요.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신장ㆍ간 기증합니다. 꼭 연락주세요. 010-XXXX-○○○○"
인천에 거주하는 이영범(34ㆍ가명)씨는 지난해 초 장기를 팔아 생활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한 인터넷 카페에 글을 남겼다. 3년 전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빚만 남긴 채 접은 후 계속되는 생활고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취직해 7년 동안 모은 돈 5,000만원을 모두 날렸죠. 6,000여만원의 은행 빚은 말 그대로 절망이었습니다."
이씨는 결국 장기매매 카페에 일주일에 한 건씩 글을 올렸고, 연락이 오면 서울이든 지방이든 마다 않고 내려갔다.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여러 번, "이젠 장기매매로 돈 벌 생각은 안 한다"는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사람들은 여전히 사이트를 기웃거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생활비와 목돈 마련을 목적으로 장기매매를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15일 민주당 이낙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파악된 온라인 불법장기매매 게시글은 357건이었다. 지난 한해 올라온 게시글이 174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급증세다. 2009년의 경우 221건이 게시됐다 적발됐다.
한국일보가 장기매매를 하겠다며 글을 올린 10여명을 전화로 조사한 결과, 금융권 대출을 거쳐 사채까지 손을 댔다 빈곤의 늪에 빠진 경우가 많았다. 서울에서 일용노동을 하는 김철민(35ㆍ가명)씨는 대학 중퇴 뒤 휴대폰 판매업에 뛰어들었다 동업자의 투자 권유에 넘어가 은행 대출금 2억5,000만원을 고스란히 사기 당했다. 그는 "20대 중반에 신용불량자가 됐는데 원금을 갚기 위해 연이율 48%에 이르는 사채를 빌렸다. 지금은 월급을 고스란히 상환에 쏟아 붓고 있는데 그마저도 힘들어 장기매매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가족 몰래 결심을 한 가장도 있었다. 물리치료사 최영훈(44ㆍ가명)씨는 은행 빚 때문에 조만간 월급이 차압 당할 위기에 놓였다. 수년 전 벤처사업에 투자해 1억원을 잃은 뒤 재개발 보상비로 받은 아파트 입주권에 문제가 생겨 세무서에서 4,500만원의 세금폭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 학원비조차 없어 더 이상 가족을 볼 낯이 없다"며 "몸을 팔아 유산이라도 남겨주고 싶다"고 울먹였다.
장기매매를 용돈벌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키, 몸무게 등을 적어놓은 한 20대 남성은 기자에게 "얼마나 주는지 궁금했다"고 가볍게 말했다. 게시판 글 중에는 간경화나 신부전증 등 만성질환을 앓는 가족 때문에 급하게 기증자를 찾는 글도 보였으나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국은 최근 급증하는 불법 장기매매에 대해 엄격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글이 발견되면 사이트 관리자에게 삭제 처리를 요청하고 상습 게시자에게는 1차로 해당 내용이 법적 금지사항임을 통보하고 있다"며 "이후에도 계속 글을 올리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있지만 장기매매 추세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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