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發) 신용위기 공포가 국내 외화자금 시장의 악재로 떠올랐다. 이달 들어 11일까지 국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5조813억원) 중 절반이 유럽계로 드러났다. 신용경색의 덫에 걸린 유럽계 자금이 급속히 이탈할 우려가 있는 만큼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1~11일 국내 증시에서 유출된 유럽계 자금은 2조7,417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빠져나간 미국계 자금 9,513억원의 3배나 된다. 유럽계에서도 특히 단기자금으로 분류되는 룩셈부르크(-8,945억원)의 이탈 속도가 가장 빨랐고, 프랑스(-6,054억원), 영국(-4,473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주식보다 안전하다는 채권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국내 채권시장에서 2조680억원을 순수히 팔아 치웠는데, 이 중 8,289억원이 최근 신용등급 강등설에 휩싸인 프랑스계 자금이었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2~11일 시가총액 기준으로 보유 주식의 1.46%를 팔아 치웠다”며 “이는 2008년 10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매도 규모인 1.8%에 근접하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당시 리먼 사태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우리나라는 환율 급등과 달러 부족으로 제2의 외환위기 직전까지 내몰렸는데, 지금과 같은 이탈 속도라면 신용경색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급격한 외화 유출과 환율의 급변동에 대비해 외화유동성을 철저리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외화유동성 확보의 안전판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 3년 전 금융위기 때 큰 효과를 봤던 통화 스와프(약속한 환율로 자국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것) 협정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국제 금융불안이 더욱 악화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주식, 채권, 외화차입금 등에서 대거 이탈할 수 있다”며 “스와프 라인 개설 등으로 외화유동성 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행세 인상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외 악재로 국내 자본시장의 자산가격 폭락과 원화 약세가 우려된다”며 “은행들의 단기 외화차입금이 많이 빠져나가면 환율이 폭등하는 만큼 미리 은행세를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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