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伊 총리가 딱 하나 잘한 일, 그를 재무장관으로 뽑은 것!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딱 하나 잘한 일이 있다면 줄리오 트레몬티를 재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지난해 3월 이탈리아와 관련한 기사를 실으면서 트레몬티(63) 장관의 기용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당시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금융위기에 처한 이탈리아의 해결사로 트레몬티가 요즘 급부상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부채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20%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가운데 그리스에 이어 2위다. 이 나라가 어려움 속에서도 아직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맞지 않은 것은 트레몬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블룸버그통신은 이탈리아가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2013년 균형예산을 맞출 것이라는 긴축재정안을 18일 승인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긴축안은 바로 트레몬티가 주도해 만들었다.
시장은 그를 보고 움직인다
국정 책임자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무능과 경박한 행실이 이탈리아 금융위기를 부채질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총리의 기행 때문에 이탈리아는 정치인 전체가 비슷한 부류로 비치고 있다.
그런 베를루스코니가 7월 초 작심한 듯 트레몬티를 몰아세웠다. "그는 팀 플레이를 하지 않고 시장하고만 대화한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보 취급한다." 하지만 이 발언은, 재정 위기의 중요 척도인 국채 수익률 급등으로 이어졌다. 베를루스코니는 트레몬티를 미워했지만, 시장은 그가 없을 경우 경제가 그만큼 더 불안해진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국채 수익률은 트레몬티가 브뤼셀의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했다가 조기 귀국한 뒤에야 안정세를 찾았다. 겁이 난 베를루스코니가 서둘러 불화설을 일축했음은 물론이다. 신뢰를 잃은 총리와, 믿음을 주는 장관은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됐다. F&C 인베스트먼트의 글로벌 투자전략 이사 테드 스콧은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베를루스코니의 꾸준한 대항마"라고 트레몬티 장관을 평가했다.
위기상황마다 적절한 대응
그리스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던 7월 유럽 국가들은 위기 저지에 분주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탈리아 역시 부랴부랴 긴축재정안을 마련했는데 이 과정에서 트레몬티가 리더십을 발휘했다. 먼저 그는 그리스 위기 해법을 놓고 이견을 보였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향해 "타이타닉호에서는 1등칸 손님도 결코 살아날 수 없다"며 일침을 가했다. 유로 위기에 독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다른 유럽 국가의 절박한 심경을 공개 토로한 것이다. 국내에선 긴축재정안을 하원 통과를 위해 공공서비스 비용 인상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사실 긴축재정안 처리 과정에서 그를 난처하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총리였다. 베를루스코니는 긴축재정안에 자신 소유의 펀인베스트 홀딩스가 내야 할 10억달러 보상금 지급을 유예하는 조항을 포함시켜 여당까지 당혹하게 했다. 트레몬티는 이때도 총리 편을 들지 않아 "팀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단 것이다.
1974년 스물 여섯의 나이에 파비아대학 법학교수가 된 그는 1994년 5월 베를루스코니 정부에서 처음 재무장관을 맡은 이래 지금까지 무려 네 차례 재무장관에 발탁됐다. 가장 최근에는 2008년 5월 역시 베를루스코니에 의해 재무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런 경력으로 보면 그는 베를루스코니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주장하는 총리에 반대하는 등 경제정책에 대해선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바로 그런 태도가 이탈리아를 더 이상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를 당시 이탈리아가 비교적 무난하게 극복한 것 역시 이런 트레몬티의 선견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아파트 월세 현금 지급 구설수
그렇다고 그가 전능한 능력의 소유자이거나 무결점 도덕주의자인 것만은 아니다. 뇌물수수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다르코 밀라네세 전 보좌관의 아파트에서 2008년부터 최근까지 거주했는데, 집세를 현금으로 낸 것이 말썽이 됐다. 이탈리아에서 현금거래는 탈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수표 혹은 계좌이체로 거래를 한다. 정부 재정 확충을 위해 탈세를 잡아내도록 독려하는 트레몬티가, 전 보좌관이 탈세할 수 있는 현금 거래를 했다는 게 문제였다. 야당은 여기에 "주당 약 1,424달러의 집세가 시세보다 낮은 것 아니냐" "돈 많은 재무장관이 그 정도 집세를 내고 그 정도 집에서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타인의 위법 가능성을 방기했다며 비난 받는 것 자체가, 트레몬티가 비리에 물든 이탈리아 정치에서 한발 물러 서 있음을 방증한다고 해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일자에서 트레몬티의 현금지급 문제가 이탈리아에서는 잘못된 행위이지만, 지금 경제 상황을 푸는데 그는 필요한 존재라고 보도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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