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인천시 서구 청라지구. 이제 막 골조 작업이 마무리돼 회색 시멘트 ㅂ겨채가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고층 아파트 공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도로 곳곳은 파헤쳐 있고 중간중간 끊겨 차량 통행을 할 수가 없다. 아직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이정표 조차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허다하다. 입주를 시작한 단지로 사정은 비슷하다. 은행, 병원, 상점 등이 들어갈 상가들은 대부분 비어 있고. 그 자리엔 중개업소와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자리잡고 잇다. 지난해 입주가 시작된 GS자이 단지 주변은 입주민과 공사현장이 뒤섞여 있다. 초등학교 횡단보도 앞을 공사차량이 신호를 무시한 채 지나가는 게 다반사다. 김모(9)양은 "먼지도 날리고 위험하다고 부모님이 집 밖으로 못나가게 한다. 전에 살던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국제 금융 허브를 꿈꾸며 아심차게 등장했던 청라신도시가 표류하고 있다. 도시를 대표할 빌딩, 서울과 바로 이어지는 도로와 지하철, 테마공원 등 장밋빛 개발 청사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거대한 아파트 공사장만 드넗게 펼쳐져 있을 뿐이다.
사방이 공사판, 주민들 살 수 없다고 아우성
"도시가 먼지투성이고 커다란 공사차량과 인부들이 활보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곳이 어디 사람 살 곳인가요. 유령도시지." 2007년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뚫고 3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모(39)씨. 입주를 미루다 미뤄 지난 3월 청라지구에 이사왔지만, 불과 5개월만에 다시 아파트를 내놨다.
문제는 주민 편의시설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현재 8,000여가구가 완광돼 3,300여가구가 입주해 있으나 도로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건설사들이 약속했던 지하철 7호선 연장도 사실상 무산됐다. 버스 한 대를 기다리려면 30분은 보통이고, 낮에도 인적이 드물어 택시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초등학교의 경우 2곳만이 개교를 하는 등 교육여건조차 좋지 않다. 교통인프라 등 기반 시설을 먼저 구축하지 않은 채 입주가 시작된 탓이다. 이씨는 "팔리면 좋오 안 팔리더라도 전·월세를 주고 떠날 것"이라고 했다. "집값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다닐 유치원조차 마따치가 않네요. 어떻게 이렇게 신도시를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는지…."
LH와 인천시, 개발늑장
청라지구는 송도, 영종도와 함께 인천의 3대 경제자유구역 중 하나로, 인천 서구 일대를 관광, 레저, 국제금융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청사진 속에 2002년 개발이 시작됐다. 미래가치가 높다는 기대감에 아파는 분양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2008년 금융위기에도 청라 분양시장에는 구름인파로 가득했다.
하지만 청라지구는 당초 계획대로 건설되기 어려운 상태다. 핵심사업인 국제금융단지 프로젝트는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자금난으로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인천시와 인천도시개발공사가 공동 추진하는 로봇랜드 조성사업을 아시안게임 등으로 시가 재원조달이 어렵자 개발계획조차 제대로 문제가 불거지면서 2014년 준공이 불투명해졌다.
인천시 관계자는 "LH와 기반시설 비용 분담을 놓고 협의 중에 있다"며 "경기불왈으로 투자유치가 어려운 만큼 공익시설 위주로 우선 착공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수천만원대 마이너스 프리미엄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주자들이나 아파트 계약자들은 속이 타 들어간다. 너도나도 묻지마 청약에 나섰던 터라 은행 빚으로 아파트를 마련한 계약자가 대부분이었다. 분양 직후 3000만~7000만원까지 형성됐던 프리미엄은 사라지고 현재 수천만원에 달하는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자리 잡았다. 실제 인천 서구 경서도 청라지구 아파트 분양권에는 평균 1000만~4000만원의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형성됐다. 입주가 1년 이상 남은 호수공원 건너편 아파트의 경우 계약금과 발코니 확장비 등을 포기하고 급매물로 내놓는 경우도 흔하다. 호수공원 조망으로 수천만원대의 프리미엄을 자랑했던 한라비발디 아파트나 SK뷰 아파트는 그나마 분양가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
지구내 자리잡은 C부동산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도 악화된데다, 약속대로 신도시가 형성되지 않자 팔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보통 분양가 보다 10%이상 낮춰서 매물이 나오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드물어 거래가 잘 성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예정자들의 빈발은 거세다. 입주만 2,000여명은 아파트를 공급한 15개 건설업체를 상대로 계약해지 및 취소와 함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황. 청라국제금융도시 입주자 연합회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분양 당시 미래형 도시가 탄생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진행된 게 어디 있느냐. 명백한 사기 분양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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