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에 배운 아름다운 말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적산일수(積算日數)’. 십여 년 전 7.8평의 텃밭을 다섯 해 동안 가꾼 적 있었는데 그때 배운 말이다. 햇빛이 내려쌓인 날의 수라는 뜻이겠다. 햇빛 내리는 날의 길고 짧음, 그 햇빛 온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작물 과육의 중량, 단단한 정도, 단맛이 매겨지기 때문에 적산일수와 적산온도를 따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물과 토양 등의 합세가 없이는 안 될 일이지만, 최상의 질, 최상의 내용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이 깃들어 있는 말임에 틀림없다. 해를 띄우시고 그 빛을 주시는 시간의 길고 짧음은 오직 하늘이 하시는 일로 인간은 도저히 대신 할 수 없다는 경외와 기원 읽을 수 있다. 적산일수를 만족한 작물들은 우리 몸을 살리는 필수 음식물로 돌아오니 적산일수라는 말에 담긴 뜻이 가볍지 않다. 임ㆍ농산 용어일 이 말을 나에게 처음 가르쳐준 사람에게 다시 고맙다 인사하고 싶다.
적산일수라는 말을 난생처음 들었을 때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것처럼, 알고 싶은 것을 안 것 처럼 기뻤다. 이건 완전 내 궁합, 나랑 속궁합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작물농 과수농 원예농을 업으로 가진 농가에게는 상품이 돼야 하는 초조한 계산과 고된 노동을 떠올리는 직업어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농촌을 모르고 농사를 모르는 나였다. 가깝게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텃밭 딸린 산자락 빌라로 이사 오자 나는 원예를 넘어 공예하는 수준으로 텃밭에 붙어 채소를 수놓았다. 위층의 할머니가 맨날 뙤약볕에 나앉아 푸른것들과 흙을 만져쌓는 나를 보며 “공예 좀 그만하라”고 소리치곤 했다. 그 할머니는 심술이 붙은 사람으로 내가 매일 들여다보며 키워논 반짝반짝 빛나는 애호박 두 개를 이른 새벽 따가서는 편을 썰어 채반에 널어 말린 일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 일생에서 그때처럼 약오르고 분기가 탱천한 적이 있었을까. 한바탕 삿대질로 붙어볼까 했지만 가족한테만 그 할마시 욕을 며칠간 해댔을 뿐이다. 전날 자기 전까지 눈에 넣었던 내 어여쁜 소녀 둘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아침. 한 이틀 더 눈으로 키우며 예뻐할 요량으로 일부러 따지 않았던 앳되고 빛나던 내 연두빛 두 소녀를 잃어 불타오르던 그날이 내 텃밭시절의 절정이 아닌가 한다.
텃밭에 나가 몇 시간이고 구부려 푸른것들 솎고 매고 들여다보며 호미질하는 시간을 특별히 사랑하였다. 뙤약볕이 불가마찜질해 주는 등짝의 뜨거움, 흙속으로 쏟아져내리는 구슬땀과 엎어져 있던 시간은 말도 생각도 끊어진 최고의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이런 것이 최고인 것. 돌아와 시계를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책 보고 시 쓸 시간이 없었다. 책 보고 시 쓰는 건 억지로 하는 일이 되고, 밭에 나가 푸른것들 읽고 호미질하는 게 시인 셈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된 일, 거꾸로가 아닌 거라고 끄덕이곤 했다. 밭에서 돌아오면 몸이 노곤하여 집안일 밀어놓고 나는 나가서 큰일을 하고 온 자이므로 대자로 벌리고 좀 누워 설핏 잠이 들어도 마땅하다고 스스로를 우대했다. 돈벌이도 글벌이도 못하는 나에게 이렇게 텃밭벌이를 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음을 내심 크게 여기던 나날. 그런 즈음, 무슨 사전을 훑다가 내가 짓는 이런 텃밭일은 농사라 하지 않고 ‘흙장난’이라고 한다는 풀이를 보며 크게 웃었다. ‘적산일수’ 다음으로 만나 간직한 두 번째로 아름다운 말이다. 다섯 해 내내 나는 볕 속에서 날을 쌓으며 흙장난에 골몰한 아이였던 거다. 나의 채소밭 놀이 이 흙장난은 자족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자폐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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