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문인기행/ 이문구 지음/에르디아 발행ㆍ328쪽ㆍ1만3,000원.
2003년 타계한 이문구는 민초의 삶을 담아내는 흥겹고 질박한 우리말 문체뿐만 아니라, 문단의 좌우를 아우른 너른 품성으로도 많은 문인들이 가슴 깊이 그리워하는 작가다. 196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그는 매년 정월 초하루에 선생 댁에 세배를 가는 것을 빠트리지 않으며 스승을 한결같이 모셨고, 민주화운동기에는 실천문학 대표 등을 맡으며 진보적 문인의 울타리자 큰 형 노릇을 넉넉히 했다.
<이문구의 문인기행> 은 그런 이문구의 풍모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문구가 생전에 동료 선후배에 대해 풀어놓은 글을 묶은 것으로, 이문구의 인간적 그릇뿐 아니라 그가 지켜본 문인들의 삶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완간된 이문구전집(전 26권) 중 <문학동네 사람들> 이란 제목으로 나왔는데, 아쉽게도 전집은 모두 절판된 상태다. 17명의 문인에 대한 글을 담았던 당시 책을 보강해 새로 낸 것이다. 문학동네> 이문구의>
책에 담긴 문인은 김동리 신경림 고은 한승원 박용래 송기숙 조태일 황석영 박상륭 김주영 윤흥길 박태순 등 모두 21명으로, 한국 현대사의 한 장을 장식한 문인들이 걸쭉한 입담과 해학의 이문구 문체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김동리에 대한 글에서는 제자들에게 제목 다는 요령까지 가르치던 자상함에서부터 '주식이 수제비고 국수가 최고급 외식, 술안주가 계란 프라이'였던 가난한 시절의 스승 모습까지 다양한 면모를 풀어낸다. 시인 박용래에 대한 글에서는 그가 왜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는지 흥미로운 일화를 유려한 문장으로 전한다. "조상 적 이름의 풀꽃을 사랑하여 풀잎처럼 가벼운 옷을 입었고, 그는 그보다 술을 더 사랑하여 해거름 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 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 그는 그림을 사랑하여 밥상의 푸성귀를 그날치의 꿈이 그려진 수채화로 알았고, 그는 그보다 시를 사랑하여 나날의 생활을 시편의 행간에 마련해두고 살았다."(91쪽)
1970년대 한국일보에 <장길산> 을 연재할 당시의 황석영에 대해 쓴 글에서는 황씨를 '믿어도 좋은 사내'라 평하면서 '김지하의 흘러간 노래, 김승옥의 항구를 주제로 한 유행가 수십곡, 송영의 휘파람과 샹송, 그리고 황씨의 만담ㆍ재담ㆍ패담을 곁들이면 그 이상 가는 쇼단이 없을 것이라 믿는다'고 적었다. 출판사 편집주간인 시인 이흔복씨는 "동료 문인에 대해 잘 알면서 그 얘기를 재미있게 쓸 작가로 이문구만한 이는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장길산>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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