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정립(三足鼎立)의 형세다."
'황색 탄환' 류샹(28ㆍ중국ㆍ12초88)이 11일 한국일보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10m허들 챔피언 전망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삼족정립은 세발 달린 솥이 서 있는 모양으로 팽팽한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뜻. 류샹은 삼족에 대해 자신을 포함 세계기록보유자 다이론 로블레스(25ㆍ쿠바ㆍ12초87)와 데이비드 올리버(29ㆍ미국ㆍ12초89)를 꼽았다. 우사인 볼트가 100m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트랙을 지배하고 있는데 반해 110m허들은 결승선 통과 순간까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류샹은 국적을 떠나 육상계의 오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아이콘이다. 2004년 전까지만 해도 단거리(100, 200, 400m)부문에선 황인종이 신체조건상 백인과 흑인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류샹은 이 같은 편견을 여지없이 허물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챔피언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류샹은 2006년엔 12초88을 찍어 세계신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데 이어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석권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조국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예선에서 기권해야만 했다. 류샹은 그러나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류샹이 이날 새벽 상하이에서 극비리에 선전에 도착했다며 12일 개막하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최종 성화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도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여건에서 이뤄진 셈이다. 류샹이 국내언론과 이메일 인터뷰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류샹과의 일문일답.
-베이징 올림픽 이후 참가하는 첫 메이저대회다. 소감을 말해달라.
"2006년과 2007년 대구 국제육상경기대회에 참가해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경기장 시설이 매우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110m허들에서 두 차례 모두 금메달을 안았다. 또 대회 관계자들의 세심한 배려로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개최도시인 대구시도 청결한 환경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지난해부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참가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 동안 아시안게임 등 지역 대회만 출전했는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선 37억 아시아인의 자존심을 걸고 뛰겠다. 내가 왜 황색탄환인지 보여주겠다."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꼽자면.
"대회 때마다 다른 선수가 아닌 내 자신만을 의식한다.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대회는 올림픽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선수권대회다. 따라서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이 금메달 후보다. 이중 로블레스와 올리버가 가장 두렵다. 특히 올리버와는 올 시즌 1승1패다. 대구에서 진짜 승부를 펼치고 싶다. 12초 후반~13초 초반에서 메달색깔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황인종으로는 트랙 단거리 부문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이 같은 모습을 기대해도 되나.
"대구 세계선수권을 통해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됐음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 있다면 런던올림픽 금메달이다. 8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는 것이 나의 버팀목이다. 현재 상태론 메달은 가능하지만 금메달 컨디션은 아니다."
-세계 제패를 위해 준비한 비법이 있나.
"7스텝 비법으로 정상에 오르겠다. 7스텝 비법이란 출발선에서 첫 허들을 넘기까지 밟는 스텝 수를 가리킨다. 과거에는 순발력을 강화해 보폭을 줄여 8스텝 만에 첫 허들을 넘었으나 부상 회복 이후 보폭을 넓혀 7스텝 만에 허들을 넘을 수 있게 됐다. 국제육상경기연맹 상하이 다이아몬드리그에서 7스텝으로 올리버를 꺾고 1위로 골인했다. 하지만 로블레스와 올리버도 똑같이 7스텝 만에 첫 허들에 도달해 스텝만으로는 금메달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최대한 낮은 자세로 바를 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취미는 무엇인가.
"경기 전에 긴장을 풀기 위해 음악을 즐겨 듣는다. 평소 훈련 때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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