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자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 국가. 이런 나라가 장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한다는 건, 결코 만만히 볼 사안이 아니다. 스스로 벼랑 끝에 몰려 내놓은 극약 처방이지만 효과는 잠시뿐. 앞으로 우리를 비롯한 세계 각국 경제에 두고두고 골치를 썩힐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0.25%로 낮춘 건 지난 2008년12월부터다. 2013년 중반까지 앞으로 2년을 더하면 미국의 초저금리 시대는 무려 4년 반으로 늘어나게 된다.
저금리 처방은 시중 유동성(돈)을 늘려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미다. 당장 전세계 주식시장의 패닉세는 멈추게 했지만 '국가채무'라는 근본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실질적인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반면 갖가지 부작용이 고개를 든다. 당장 미국의 초저금리는 달러 약세를 더욱 부추길 전망. 9일(현지시간) 미 달러화는 유로, 스위스프랑 등 주요국 통화에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이는 곧 여타 신흥국들의 통화 강세로 이어진다. 원ㆍ달러환율이 앞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는 의미로, 경우에 따라 각국이 수출경쟁력을 위해 자국 통화가치 낮추기에 나서는 '환율전쟁'이 재연될 수 있다.
특히 이례적으로 2년이라는 기간까지 보장받은 투자기관들이 저금리의 달러를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달러캐리 트레이드' 현상마저 확산될 경우, 최근 외국인 채권투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우리로서는 과도한 외화자금 유입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 덩달아 지금은 하락세를 보이는 국제 원자재가격이 유동성 효과를 등에 업고 상승세를 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선진국의 경기부진과 한국의 상대적인 고금리 매력이 결합돼 달러자금이 몰려 들어올 경우 자산거품과 물가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장기간 금리를 올리지 않기로 한 이상,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들의 금리 인상에도 큰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채권시장은 11일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100% 금리 동결'을 예상한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금리 인상 전망이 우세했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것. 전세계의 경기 불확실성이 확산된데다 금리 결정시 주요 변수로 고려하는 내외금리차(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차이)의 한쪽 변수가 고정된 점까지 감안하면 앞으로도 금리인상은 훨씬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발등의 불인 물가를 잡으려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금리 인상시 예상되는 '내외금리차 확대→외국자본 추가 유입→환율 급락→수출경쟁력 저하'의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섣불리 올리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성장과 물가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큰 딜레마를 안겨준 셈"이라고 말했다.
경기둔화 우려와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최근 유가 등 국제 원자재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향후 물가압력을 덜어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이달 들어 16.4%나 급락했다. 하지만 이 역시 달러 약세 현상이 지속될 경우 원자재로 유동성이 몰리면서 언제든 다시 방향을 틀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초저금리로 유입된 외국자금이 국내 채권에 쏠릴 경우 한은의 금리인상 효과가 무력화될 가능성도 있다"며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돌아올 자산버블과 인플레 압력 같은 부작용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미국의 이번 조치는 앞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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