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벤더 향기와 삿포로 맥주… 설국의 여름은 달콤했다
공항을 나서자 서늘한 기운이 왈칵 밀려왔다. 얼음이 바로 기화한 듯한 바람이었다. 냉장창고 안에라도 들어온 듯 몸이 선득했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형용이 적용될 만한 것은 햇볕. 그나마 따갑지 않고 포근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
서울에서 2시간 40분을 날아가면 5도 가량 수은주가 낮아지는 곳, 홋카이도. ‘북해도’(北海道)라는 한자 지명 안에 이미 시원한 여름이 담겨있는 듯했다. 홋카이도의 여름 하늘은 남단의 염천과는 달랐다. 5월의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따스한 기운이 낮을 채웠고, 10월의 서늘함이 밤공기를 식혔다. 아마 아시아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름을 나는 곳이리라.
상쾌하고 풋풋한 도시 삿포로
홋카이도의 면적은 8만㎡가 넘는다. 남한 크기의 80%에 해당한다.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허다한, 광대한 섬이다. 3박4일 정도의 어설픈 일정은 섬을 즐기기엔 너무나 짧다. 휴가 기간이 1주일을 넘기기 힘든 보통 여행객이라면 설국의 여름을 맛보기로 즐기는 수밖에.
섬의 중심 삿포로는 세련이란 단어가 제법 잘 어울리는 도시다. 도로는 바둑판처럼 정갈하고, 도로 위를 달리는 트람이 이국적 풍광을 연출한다. 북구 또는 캐나다의 어느 대도시에 와 있는 듯하다.
시간을 몸에 축적한 오래된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눈길을 끈다. 애칭 ‘아카렌가’(붉은 벽돌)로 불리는 홋카이도청 옛 본청사는 19세기말 일본의 서양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건물이다. 미국의 네오바로크 양식을 따른,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단한 몸체가 인상적이다. 250만개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안엔 홋카이도의 역사가 숨쉰다. 선사시대 이전 화석과 근대 홋카이도 개척기의 유물, 그림 등을 만날 수 있다. 1878년 세워진 시계대(臺)도 주요 볼거리다. 삿포로의 상징 중 하나로 한 시간마다 종을 울린다. 일본의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한국엔 시계탑으로 더 알려져 있다. JR타워와 삿포로 TV탑은 현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높이 100m 내외의 전망대를 각각 갖추고 있다. 인구 120만명의 대도시 삿포로의 야경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음식은 삿포로 여행의 즐거운 동반자다. 라멘의 고장이라는 별칭답게 여러 종류의 일본 라면을 맛볼 수 있다. 양고기와 야채를 불판에 구워먹는 요리 징기스칸은 홋카이도만의 별미.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생맥주를 곁들이면 피로에 지친 몸이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쇼핑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새벽까지 문을 여는 도심 상가 돈키호테는 한국 관광객들에겐 이미 명물. 약 1㎞ 길이로 펼쳐진 아케이드 상점가 다누키코지에서도 여러 음식과 기념품을 고를 수 있다.
삿포로에서 39㎞ 떨어진 오타루는 낭만의 항구다. 해운업이 발달한 어항이었던 이곳은 지금 생선 비린내 대신 유리와 오르골이 손님맞이를 한다. 생선이 가득했던 석조창고의 외양은 그대로이지만 유리공예품과 각양각색의 오르골이 그 안을 채우고 있다. 화물을 창고로 옮기기 위해 1920년대 만들어진 운하는 여행객의 낭만을 자극한다. 고풍스러운 옛 관청 건물과 깔끔한 석조창고 등이 멋스러운 풍경을 빚어낸다. 걸어서 도심을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거리의 카페와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이 눈길을 잡고 혀를 자극하니 반나절이 후딱 간다.
여름에 즐기는 화사한 꽃놀이
여름 홋카이도는 꽃천지다. 겨울, 하얀색 일색이던 산과 들은 노랗고 파랗고 빨갛다. 겨울을 견뎌낸 여름 꽃은 원색으로 선연하다.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여럿 있다. 대표적인 곳이 홋카이도 중부에 위치한 후라노와 비에이. 끝 모르게 펼쳐진 라벤더를 만날 수 있다. 후라노는 삿포로에서 143㎞ 떨어져 있다. 차로 2시간 17분가량 걸린다. 후라노 중심부에서 라벤더로 유명한 도미타 농장까지는 차로 20분이 걸린다. 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꽃 내음이 평원을 채우는 6~10월 농장 인근에 임시 역이 운영된다. 이른바 ‘라벤더 꽃밭 역’이다.
꽃들은 자태와 향으로 눈과 코를 사로잡는다. 형형색색의 꽃은 푸른 하늘과 조우하며 감탄사를 불러낸다. 일본과 한국 등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은 애당초 피서객이었지만, 이곳에선 상춘객이나 다름없다.
후라노의 라벤터 꽃밭 역에서 비에이로 향하는 열차는 그 자체로 훌륭한 관광상품이다. 놀이공원 열차처럼 아기자기한 열차의 창 너머로 홋카이도의 풍광이 스친다. 청정한 공기가 허파를 자극하고, 산들거리는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동화 속 평원을 내달리는 듯 열차 안에서 삶의 먼지는 그렇게 조용히 씻긴다.
홋카이도=글·사진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더 넓어진 홋카이도 하늘 길
홋카이도 가는 하늘 길은 다양하다. 서남부의 하코다테공항, 중남부의 신치토세공항, 중부의 아사히카와공항을 이용할 수 있다. 한국 발 비행기가 가장 활발하게 오가는 곳은 신치토세공항이다. 인천공항에서 주 19회, 김해공항에서 주 3회 비행기가 이륙한다. 삿포로를 홋카이도 여행 기점으로 삼는다면 신치토세공항 이용이 편리하다.
최근엔 저가항공사 진에어가 대한항공, 이스트항공에 이어 인천공항_신치토세공항 주 2회(인천공항 출발 월ㆍ금 오전 9시30분) 운항에 들어갔다. 홋카이도 가는 하늘 길이 더 넓어진 것이다. 진에어는 당초 1일 1회 운항할 방침이었으나 일본 동북부 지진 여파로 횟수를 줄였다. 진에어는 조만간 운항 횟수를 늘릴 예정이다. 진에어 취항은 여름 휴가철 해외 골프여행객들에게도 희소식이 될 듯하다. 홋카이도 전역엔 800개의 골프장이 산재해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열차 여행을 해볼 만하다. 10개 노선의 철도가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달린다. 3일간 이용할 수 있는 자유권이 1만 5,000엔(보통권 기준), 7일 이용 자유권이 2만 2,000엔이다. 홋카이도 열차는 혼슈 섬과도 연결돼 있다. 삿포로_오타루 1일 이용권 등 다양한 형태의 티켓을 활용하면 교통비를 줄일 수 있다. 홋카이도는 생각보다 넓은 곳이다. 일정이 빠듯하면 욕심내지 말자. 특정 권역을 정해 집중적으로 여행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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