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A철강업체는 얼마 전 최대 거래처중 하나인 B조선사로부터 선박용 후판 공급가격을 낮춰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본산 후판 가격이 톤당 850달러(92만원) 이니, 기준가(111만원) 보다 10% 가량 낮은 100만원에 공급해달라는 요구였다. A철강사 관계자는 "일본산 철강제품이 국내에 사실상 덤핑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수입되고 있다"면서 "중국산 저가 제품에다 일본산 마저 저가 공세에 나서 국내 영업이 힘들어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내 시장에서 일본산 철강제품들의 저가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콧대를 높이 세웠던 일본 철강사들이 덤핑에 가까울 만큼 낮은 가격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신일본제철, JFE스틸, 스미토모금속공업 등 일본 철강업체들의 대한국 수출단가가 현재 ▦열연강판은 톤당 730달러(79만원) ▦후판은 850달러(92만원)선까지 떨어졌다. 이는 각각 720달러(78만원), 820달러(89만원)대인 중국산 열연강판 및 후판가격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 동안 일본산 철강 제품은 품질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산보다 톤당 100~200달러가량 비싸고, 한국산 철강 제품과는 비슷한 수준에 공급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수입되는 일본산 후판 가격은 국산 제품 보다 150달러 이상 싸다"면서 "철광석과 유연탄 등 원료값 상승분을 고려할 때 일본 철강사들은 사실상 원가 수준에서 마진 없이 한국에 수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철강 업체들이 자존심을 꺾어가며 한국 시장에 대해 저가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일본 내수시장이 급격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철강제품 최대 수요처인 완성차 및 전자업체들이 일본 대지진으로 생산 차질을 빚은 데다, 조선업체들마저 수주부진을 겪으면서 현재 일본 내 철강 제품 재고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재고 물량을 밀어내기 위해 철강사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덤핑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하반기에 일본 철강 업체들의 덤핑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데 있다.
일본의 연간 철강생산량은 1억톤가량으로 이중 6,000만톤은 내수시장에서 소비되고 4,000만톤은 해외에 수출하고 있으다. 하지만 올해 일본에선 내수 부진으로 열연강판 2,600만톤, 후판은 400만톤 이상 공급초과가 빚어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결국 저가 밀어내기가 앞으로 거세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본산 철강재 수입량은 지난해 기준으로 열연강판 400만톤, 후판 170만톤이었다. 올해는 상반기 열연강판 170만톤, 후판 97만톤이 수입됐는데, 하반기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같은 일본 철강 제품의 덤핑 공세는 국내 철강업체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열연강판 및 후판 가격은 각각 106만원, 111만원이지만 현재 유통시장에선 각각 90만원, 105만원대에 거래될 만큼 이미 가격이 하락한 상황인데, 일본업체들의 공세로 추가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본 철강업체들이 지리적 특성상 운송비가 가장 저렴한 한국 시장에 덤핑 물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국내 철강사들로선 마땅히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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