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알아 왔던 '아가씨와 건달들'(Guys and Dolls)은 잊는 게 좋겠다. 1950년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작, 국내에서도 1983년 초연 이후 20년 넘게 재공연을 반복해 온 라이선스 뮤지컬인 까닭에 "또 '아가씨와 건달들'이야"라는 반응을 보인 당신이라면.
'아가씨와 건달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유머가 특징인 브로드웨이 쇼뮤지컬의 정석으로 도박사 스카이와 네이슨, 선교사 사라와 나이트클럽 가수 아들레이드 네 남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 배신에 관한 이야기다. 창작자들에게는 검증된 콘텐츠인 동시에 진부함이라는 위험 요소가 있는 양날의 검이다. 2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이번 공연은 동시대성을 반영한 장치를 켜켜이 마련함으로써 상투적인 느낌을 벗었다.
6년 만의 재공연인 이번 무대는 캐릭터부터 다르다. 내기 때문에 자신에게 접근한 스카이(김무열, 이용우)와 사랑에 빠지는 선교사 사라(정선아)는 더 이상 조신하기만 한 모습이 아니다. 길이는 길지만 허벅지까지 트임이 있는 치마를 입은 사라는 순수한 겉모습 이면에 절제된 욕망을 감춘 현대 여성으로 탈바꿈했다. 14년째 약혼 상태인 아들레이드(김영주, 옥주현)와 네이슨(이율, 진구)의 관계는 여성 연상 커플로 설정했다. 자연스럽게 아들레이드의 모습에는 능력 있는 미혼 여성인 '골드미스'의 특징이 투영됐다.
무대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오케스트라를 무대 위로 올리고 배우들의 주요 등퇴장로를 무대 중앙에 뒀다. 음악과 장면 전환을 그 자체로 새로운 볼거리로 만든 것이다. 공들여 번역한 가사에서는 소소한 재미가 묻어난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게으름뱅이가 결혼을 하고 싶어 취직을 한다"는 투로 번역됐던 대표적인 삽입곡 'Guys and Dolls'는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여자 때문에 와인을 공부하고 술값을 아껴 기념일에 이벤트를 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개막 전부터 '화려한 캐스트'라는 평을 들었던 배우들의 연기는 무난했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뮤지컬의 매력에 눈을 뜨고 뮤지컬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된 작품으로 꼽는다. 원작의 틀은 유지하되 요즘 관객을 겨냥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이번 무대로 '첫사랑 같은 뮤지컬'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연출 이지나. 9월 18일까지.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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