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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숲에 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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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숲에 관한 기억

입력
2011.08.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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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오기는 왔던가? 마른 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빗물 고인 웅덩이처럼? 젖은 나비 날개처럼?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꽃그늘에서 입을 맞추었던가?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더 붉어졌던가? 그때 너는 들었는지? 수천 마리 벌들이 일제히 날개 터는 소리를? 그 황홀한 소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은 소음이라고? 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 사랑은 모든 감정의 극단을 가르쳐 줍니다. 극단의 행복, 극단의 슬픔. 처음 당신과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비를 맞으며 숲을 향해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맞이하는 빗방울. 빗물 괸 웅덩이엔 맑은 하늘이 들어 있고 우린 신선한 공기에 감싸인 채 입을 맞추었지요. 숲은 영원히 거기에 있고 우리의 마음도 한결같이 머물 줄 알았습니다. 숲은 움직이는 일이 결코 없으니까요.

세월이 흐르고 우리는 맥베스마냥 가여운 주인공이 됩니다. "버넘 숲이 움직여 다가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널 해칠 수 없을 거다"는 예언을 듣고 왕위를 찬탈한 맥베스처럼, 우리도 제 것 아닌 왕국, 제 몫 아닌 사람을 욕심 냈어요. 극의 막바지에 맥베스는 숲이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적들이 버넘 숲의 나뭇가지를 꺾어 몸을 숨기며 다가온 것입니다. 그는 탄식합니다. "인생, 그것은 바보가 떠드는 이야기, 소음과 분노로 가득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황홀한 소음에 대한 시인의 독백 속에서 맥베스의 도저한 비탄이 울립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숲, 그 극단의 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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