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도그마에 빠진 세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도그마에 빠진 세상

입력
2011.08.08 11:26
0 0

원자나 전자 같은 초미립자의 물리현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관찰이나 측정이 현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관찰하기 전까지 대상이나 대상의 상태는 여러 가능성으로 존재하지만 관찰의 순간 포착된 상태만 남을 뿐 다른 모든 가능성은 소멸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양자역학에서 관찰은 대상에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 행위로 이해된다. 이러한 개념에서 다중우주니, 평행우주니 하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지난 5월 개봉해 100만 관객을 끌어모았던 영화 '소스 코드'나 코미디영화인 '사랑의 블랙홀', 고전이 된 '스타트랙'도 이러한 개념을 차용해 만들어졌다. 관찰하고 경험할 때마다 다른 우주, 대안 세계가 펼쳐진다. 미시세계의 물리 현상을 밝히기 위해 나온 양자역학의 이러한 원리는 거시세계를 다루는 고전물리학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하지만 정신과 의식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그럴듯해 보인다.

지난 6월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황모씨가 법정에서 판사의 감형 선고를 받고는 "김정일 장군님 만세"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건설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3대 세습이 이뤄지고 있고 인민들이 탈북에 줄을 서 있다고 하는 판에 제 정신이냐 말할지 모르지만 기자가 보기에 그는 자신이 관찰한 대상을 현실로 믿고 있을 따름이다. 세계의 흐름과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매우 극단적으로 보는 그 세계를 그는 정상적인 사회로 보고 있다. 북한체제에 대한 부정적 정보는 그의 의식세계에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차단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정도 되면 이성적 비판이나 판단이 결여된 도그마에 빠졌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황씨의 예는 극단적일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도그마로 가득하다. 종교나 좌우파의 이데올로기, 자본과 노동, 무상급식 문제도 그렇다. 서로가 세계나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좁게는 한진중공업 사태만 보더라도 기자는 생산성 문제를 정리해고로 해결한 사측이나 200일이 넘게 40m 크레인에 올라있는 김진숙씨도 다른 가능성과 측면을 제대로 보지도, 판단하지도 않고 있다고 본다. 의식의 작용이라는 것이 참 묘해서 실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고에서 쉽게 빠져나오질 못하고 반대되는 증거나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세력이 형성되면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전자를 한 구멍에 쏠 때는 무늬가 구멍의 형태 그대로 형성되지만 두 구멍에 전자를 쏠 때는 전자 간의 파동 간섭 현상으로 인해 다른 형태(회절무늬)로 '변질'이 일어난다고 한다. 현실세계에 대입하면, 바라보는 혹은 원하는 세계나 대상이 무엇이든지간에 충돌이 빚어지면 누구도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있는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인정할 자세가 돼 있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언제나 소위 '강(强)대 강(强)'의 충돌이라는 비싼 대가를 매번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느닷없이 서울시민들이 182억원이나 드는 무상급식 투표를 이 달 말에 하게 된 것도 결국 다른 가능성에 대한 무시와 몰이해 때문이 아니겠는가. 기자는 '이익의 균형'이라는 '변질'을 좋아하는데, 도그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쨌거나 끝장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