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의 '구구산방'(龜龜山房)에서 하룻밤 쉬고 왔습니다. 물소리가 가까운 마당 모퉁이에 텐트를 쳤습니다. 시인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빈집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급하게 떠나면서 토마토와 옥수수와 술 한 잔을 차려두고 떠난 미안함이 주인 대신 그곳에 있어 섭섭하진 않습니다.
텃밭에서 오이 하나와 상추 한 움큼, 풋고추 몇 개 따와 푸른 저녁을 먹고 그대로 밤을 기다렸습니다. 불을 밝히지 않고 밤을 기다린 것은 산방 인근엔 사람의 불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선 별빛이 가장 밝은 빛이며, 태초부터의 빛이었습니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은 바람대로, 산방을 에둘러나가는 물소리는 물소리대로, 풀벌레는 풀벌레대로 마당에 나와 별을 기다리는 속에서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별이 뜨는데 아아, 그건 살아있는 천문도였습니다. 책에서 별자리를 배우는 불행한 아이들에게 그냥 그대로 퍼 주고 싶은 별의 잔치였습니다. 오랜만에 별과 밤새워 이야기하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밤을 밝히는 화려한 불빛에 가려 하늘의 별을 보지 못하는 우리는 별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별은 늘 제 자리를 지킵니다. 별을 보기 위해 나부터 스스로 불을 끄고 어두워져야 하는, 너무 환한 시대를 삽니다. 별이 있는 시인의 산방에서 산이 요란한 세속을 떠나왔다는 속리산(俗離山)이 가까웠습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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