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도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주 천신만고 끝에 부채한도 증액안에 서명할 때만해도 위기를 넘기는가 싶었다.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를 찾아 선거자금 모금을 재개하고 50세 생일을 자축하며 본격적으로 대선 행보에 돌입할 참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주가가 하루에 513포인트나 폭락하더니 이튿날에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미국의 최고 국가신용등급을 박탈했다. 지속적으로 경제에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당장 공화당은 또 한번의 호재를 만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부채상한 협상에 이어 신용등급 강등의 책임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덮어 씌워 '경제실패 지도자'로 확실히 낙인찍겠다는 전략이다. 공화당 전략가인 론 본진은 "미국인들은 모든 면에서 1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며 "등급 강등은 국가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신용등급을 떨어뜨려 국민에게 굴욕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반격은 이미 시작됐다. 공화당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6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의 실패한 지도력에 미국의 신용마저 희생됐다"며 "등급 강등은 그의 집권기에 미국 경제가 몰락하고 있다는 징표"라고 성토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등급강등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민주당에 땜질대책으로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경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등급 강등 전까지 여론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편이었다. 부채한도 증액 협상에 대한 뉴욕타임스(NYT)-CBS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협상 난항의 책임이 민주당(66%)보다 공화당(72%)에 더 많다고 답했다. 하지만 5년 전에 비해 3분의 1 가까이 떨어진 주택가격과 2%가 채 안되는 경제성장률 등 암울한 경제지표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특히 소비자신뢰지수를 걸고 넘어졌다. WP는 "대선이 실시되는 해 소비자신뢰지수가 낮았던 적은 1908년과 1992년 두 차례 있었는데, 예외 없이 현직 대통령이 패배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는 59.5를 기록했다.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향후 경제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다.
공화당은 한 발짝 더 나아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며 오바마 대통령을 압박하고 나섰다. 짐 드민트 공화당 상원의원은 "가이트너 장관은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한 각종 노력에 반대해 왔다"며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즉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수주 안에 재정적자 감축과 경제 회복을 위한 공동의 약속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을 뿐, 신용등급 강등에 관한 언급은 회피했다. 민주당 전략가인 마크 멜먼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좋은 소식은 선거가 오늘 실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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