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사들의 가장 큰 불만은 교육 외적인 업무, 이른바 '잡무'가 많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려면 사무행정요원을 늘려야 한다. 헌데 인력 충원에는 큰 돈이 든다. 문제는 지금처럼 공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투입 등 사회적 부담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교사들이 매년 받는 1인당 평균 300만원가량의 성과급을 포기하면 된다.
2008년 교사 성과급 예산은 총 1조800억원. 연봉 2,500만원을 받는 학교 사무행정직 4만명을 채용할 수 있는 돈이다. 4만명의 사무행정요원이 전국의 초ㆍ중ㆍ고교에 새로 투입되면 전국의 교사들은 잡무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하면 공교육의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고, 무엇보다 4만여 개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창출된다.
기자의 생각이 아니다. 교육 현장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해 온 서울 창동고 교사 이기정씨의 아이디어다. 그가 최근 펴낸 라는 책에 담긴 '교사 성과급'과 '4만명 일자리'의 빅딜 제안을 접하면서 무릎을 탁 쳤다. 양극화 해소의 묘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중경 제안 의미있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근 비슷한 제안을 했다. 대기업 경영진 월급이 지나치게 많으니, 그 돈을 조금 줄여 청년층 고용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재계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 고액 연봉자 몇 명의 월급을 깎는다고 일자리가 늘어날 리 만무하며, 정부가 기업의 임금 문제까지 걸고 넘어지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장ㆍ차관 연봉부터 깎으라"는 감정 섞인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라는 관점에서 최 장관의 제안은 진지하게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재계가 주장하듯이, 고액 연봉자가 고작 몇 명 수준은 아니다. 7월 1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701곳의 임원은 1만4,456명에 달한다. 삼성그룹 임원만 1,830명이다. 연봉도 많게는 수십억원이다.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사내임원 1인 평균 연봉은 8억7,000만원으로, 평직원 연봉(6,280만원)의 14배나 됐다(재벌닷컴 조사). 여기에 배당과 스톡옵션을 합치면 그 격차는 수백 배로 벌어진다.
10년 전만 해도 경영진과 직원 간 임금 격차가 이렇게 크진 않았다. 대기업 오너들이 성과주의를 강조하면서 미국처럼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인데, '정당한' 보상 평가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임원 인사가 대주주인 오너의 입김에 좌우되는 우리 현실에서 고액 연봉에는 총수에 대한 충성의 대가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고액 연봉 자체가 서민들에게 미치는 위화감과 좌절감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오늘날 대기업 성공의 밑바탕에는 국가의 물적 자원이 수출 위주 성장정책에 집중되도록 뒷받침해온 국민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대기업들은 경제위기 때마다 환율과 금리, 세금 등 정부의 지원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낼 수 있었다. 경영진과 주주끼리 성과급 잔치, 고(高)배당 잔치를 벌이기 전에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도리일 것이다.
기득권층의 양보 필수적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동반성장'이다. 이는 양극화가 사회 통합을 저해할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실업과 불안정 고용이 증가하면서 소득 격차가 날로 확대되는 현실을 정부의 힘만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양극화라는 구조적이고 거대한 흐름을 바꾸려면 우리 사회 기득권 계층의 양보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경영진의 고액 연봉만 줄일 게 아니라, 주주들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양보도 필요하다. 국가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온 대기업 경영진이 먼저 모범을 보이기 바란다. 그러면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공기업, 장ㆍ차관 등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소득의 일부를 양보한다면 수십만명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최 장관의 제안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사회적 대타협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