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덮친 금융위기 공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데는 마땅히 위기를 통제해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점도 큰 몫을 한다. 그리스 구제금융→미국 채무불이행(디폴트) 임박→이탈리아 디폴트 위협 고조→미국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 대서양 양쪽에서 악재가 번갈아 터져 나오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의 지도자들은 해결책이나 비전 제시에 실패하며 오히려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 리더십은 정쟁에 발목
특히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부채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70년 만에 가차없이 강등한 것은 시장이 미국의 리더십에 강력한 불신임 투표를 행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같았으면 가장 앞장서서 국제적 위기해결 방안을 모색했을 미국 대통령의 지도력이 국내 정치에 발목 잡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경제ㆍ경영 컨설턴트인 존 마리오티는 6일(현지시간)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경험도, 능력도 갖추지 못해 경제를 뜯어고칠 수 없다"면서 "갈피를 못잡는 정책 실패는 그의 실수와 단점을 더 악화시키기만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미 의회도 리더십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채무협상 결과는 미국의 재정문제를 풀기에 미흡했고 지출삭감을 통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만 키웠다"며 "당파적 벼랑 끝 전술이 투자자 신뢰를 깎아먹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리더십은 여름 휴가중
영국 및 유로존 빅3(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도 저마다의 이유 때문에 현 상황을 타개할 묘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대륙 문제에서 발을 빼려 하고, 독일은 그리스 구제금융에 가장 큰 부담을 지는 게 불만이다. 프랑스는 그리스에 가장 많은 빚이 물려 있어 운신의 폭이 좁고, 이탈리아는 위기 당사국이다. 로마노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는 "누가 이 상황을 책임지는지 알 도리가 없다"며 "이것은 유럽의 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유럽연합(EU)의 조직이 약점을 노출했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설상가상으로 상당수 유럽 지도자들은 지금 여름 휴가를 가 있다. 영국은 총리, 부총리, 재무장관이 다 자리를 비워 외무장관이 상황을 관리하고, 독일 야당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휴가에서 빨리 돌아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정상들이 부재중이라도 비상연락망을 통해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 말하지만, 시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해변에서 위기를 풀 수는 없다"며 휴가지에서 전화회의를 하는 지도자들을 꼬집었는데, 정치인의 휴가에 매우 관대한 서구의 전통을 감안하면 현 상황이 매우 심각한 비상사태라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