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베스 대통령 딸부터 빈민가 마약 소년까지 오케스트라로 어우르죠"
1975년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며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72) 박사는 가난과 약물, 총기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거리의 아이들을 불러모으고 악기를 쥐어줬다. 전국의 음악교사를 모아 그들에게 연주법을 가르쳤다. 나중에는 오케스트라로 연주도 하게 했다. 함께 연주하면서 서로 배운다는 이 문화운동은 '엘 시스테마'로 명명됐고 그로부터 베네수엘라 어린이 200만명이 악기 연주를 배웠다. 여기서 탄생한 시몬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1983년부터 전세계 순회연주를 다니며 찬사를 받았고 구스타보 두다멜(30)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도 배출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난한 어린이도 클래식을 즐겁게 배울 수 있다는, 그로부터 사회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엘 시스테마는 현재 전세계 25개국 이상에서 따르고 있다.
엘 시스테마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아브레우 박사를 좇아서 엘 시스테마만의 현악교육법 세악(CEACㆍCapacitacion Especializada en la Area de Cuerdas)을 만든 수잔 시만(47ㆍ미국 마이애미 뮤직프로젝트 총괄감독) 같은 음악교육가의 힘도 컸다. 한국 문화관광부는 작년부터 국내에서도 엘 시스테마를 적용한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지난 5일 방한, 11일까지 화성과 부천에서 워크숍을 갖는 수잔 시만을 만나봤다.
_ 엘 시스테마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가?
"아버지는 스페인인인데 프랑코 독재를 피해서 미국으로 이주했고 1971년 베네수엘라로 이민했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유가 인상에 따른 호황으로 음악에 대한 수요가 커져서 음악학교들이 많이 생겨났다.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폴란드 출신의 음악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버지 역시 트렘펫 연주자로 마라카이보 콘서바토리 교수가 됐다. 1975년 아브레우 선생님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해서 아버지는 교육자로, 나는 단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그 무렵 나는 마라카이보 콘서바토리에서 프랑스인에게 바이올린을 2년 정도 배운 상태였지만 연주는 소품 정도밖에 못했다. 그런데 아브레우 선생님은 거기 모인 청소년 500명에게 처음부터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악보를 나눠줬다. 2주 동안 연습을 해서 공연을 하자는 것인데, 그게 정말 가능했다. 또래들과 같이 연주하면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력이 금방 늘었고 음악이 무척 재미있었다. 결국 2년 뒤 이를 토대로 시몬볼리바르 청소년오케스트라가 탄생할 때 창단 멤버가 되었고, 여러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였다가 악장이 되고, 오케스트라의 매니저로, 나중에는 엘 시스테마를 실행하는 가장 큰 지역센터인 몬탈반 뉴클레오의 책임자까지 되었다."
_ 통상적인 음악교육과 엘시스테마는 무엇이 달랐나?
"지금도 그렇지만 유럽식 클래식음악 교육은 1대 1 도제식으로 학생들을 엄격하게 다루면서 악기 연주에 숙달되기 전에는 차이코프스키나 베토벤에는 얼씬도 못하게 만든다. 이런 방식은 지루하고 음악 자체를 싫어하게 만든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은 즐겁게 한다' '연주하면서 연주를 배운다'는 모토에 따라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또래들과 함께 최고의 작품을 연주한다는 목표를 세운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건전한 경쟁심이 생겨나고 뛰어난 연주를 목표로 하면서 실력이 향상된다. 음악가는 모든 면에서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피아노, 작곡, 역사도 가르쳤다. 나중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몰라도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그것이 굉장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냈다. 악기를 처음 만져본 사람도 뛰어난 연주가가 되게 했다."
_ 지금도 똑같은가?
"그렇다. 엘 시스테마는 개인레슨을 반대한다. 대중을 통해 가르치며 반드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도록 한다. 물론 30여년을 거치면서 교수법 자체는 점차 발전해왔다. 어린 연령대로 교육이 확대되어 지금은 두 살짜리를 위한 입문과정도 있다. 보통은 여섯 살에 입문하는데, 들어오면 우선 합창을 배운다. 음감도 익히고 영상자료로 오케스트라가 무엇인지, 악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리코더를 주었다가 1년이 되면 선생님의 관찰, 신체조건에 따라 자기 악기를 골라준다. 입이 너무 크면 트럼펫은 하기 힘들다. 목이 길면 비올라를 하기 좋다. 열 살이 되어 오케스트라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악기를 바꾸지 않는다."
_ 유아를 위한 현악기 교육프로그램인 세악을 만든 사람이 당신이라고 들었다.
"엘 시스테마의 고민은 악기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청소년들이 어떻게 악기를 배우돈逑?수 있을까에 있었다. 15년 전쯤 몬탈반 뉴클레오에 있으면서 다섯 살짜리 15명을 모아서 현악기 교육을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익히는 방법은 스즈키를 따르기도 했지만 일단 함께 모아서 배운다는 엘 시스테마의 원칙은 지켰다. 그 결과 이 아이들이 여덟 살이 되자 비발디를 연주하게 됐다. 이걸 토대로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을 갖춰서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을 토대로 음악적 지식이 전혀 없는 아이들도 현악기를 통해 오케스트라에 접근할 수 있다는 엘 시스테마의 공식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몬탈반에서 그 첫 수업이 이뤄진 방을 '분만실'이라고 부르면서 내 업적을 인정해주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아브레우 선생님 말고는 아무도 이 프로그램을 지지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완성된 뒤에 재정 지원을 해준 재단에서 내 이름을 넣어 프로그램 이름을 짓자고 했지만 주변에서 여자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세악으로 명명됐다. 8년 전부터 미국 마이애미에서도 가르치고 있는데 2년이면 가능하더라."
_ 이제는 중남미는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 중국까지 엘 시스테마를 배우고 있다는데, 나라마다 엘 시스테마의 원칙은 같은가?
"나라마다 환경이 다르니 교수법도 달라지는 것을 인정한다. 엘 시스테마는 세계적인 지휘자나 음악가를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니다. 아이들이 참여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공동체 정신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방법론에서는 오케스트라로 할 것, 많은 청소년이 참여하게 할 것, 음악은 매우 뛰어난 수준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_ 어린이의 행복이 중요하다면서 즐기기만 하면 안되나? 왜 뛰어난 수준을 요구하나?
"그냥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수준을 목표로 할 때 교육도 의미있고 어린이들이 진정한 성취감을 알게 된다. 놀이로 접근한다고 해서 음악적 결과가 아무렇게나 되면 안 된다."
_ 독일 같은 오케스트라 종주국이 엘 시스테마에서 무얼 배우는가?
"열정. 매사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독일인의 특성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들 한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배우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혈관을 뛰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전파한다."
_ 누구나 참여할 수 있나?
"그렇다. 베네수엘라에는 전국에 180개의 뉴클레오가 있다. 뉴클레오가 가난한 지역에 세워지기 때문에 중산층이나 부유층이라면 멀리서 찾아와야 한다는 점만 다르다. 신청자는 다 받기 때문에 몬탈반에서 1,500명까지도 가르쳤다. 센터 여력이 없을 때는 대기번호를 주는데, 대기번호가 700명까지 간 적도 있다."
_ 가난한 어린이들만 가르치는 곳이 아닌가?
"몬탈반 뉴클레오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경제부 장관의 딸들도 가르쳤다. 우리집 아이들 네 명도 엘 시스테마로 음악을 배웠다."
_ 부자에게도 악기를 비롯한 모든 것이 무료인가?
"당연하다. 흑인이냐 백인이냐, 가톨릭이냐 인디오냐, 부자냐 가난하냐 그런 것은 어린이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인종이나 철학,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들은 잠재된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똑같이 가져야 한다."
_ 부자에게 기부받아 더 많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은 없는가?
(이상하다는 듯)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런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자식이나 손주 세대에게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다고 정신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고 어린이가 경제적으로 풍요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_ 계층은 반드시 섞어야 하는가? 가난한 사람만의, 부자만의 오케스트라는 안 되는가?
"물론이다. 통합의 의미는 가난한 아이들만이 아니라 부잣집 어린이들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은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다. 다양한 어린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어울리면서 변해가는 것을 보면 우리가 꼭 가르쳐야 할 가치가 뭔지 더 확실히 알게 된다."
_ 실제 빈부격차는 얼마나 되나?
"신발이 닳아서 구멍난 아이도 오고 독일제 운동화를 신은 아이도 온다. 눈으로 보니 그렇다는 것이지, 이런 통계를 내본 적은 없다. 오케스트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매일 나오는지, 얼마나 열심히 해서 실력이 올라가는지 뿐이다. 성취도에 따른 차별은 하지만 연습실에 들어오는 순간, 똑같은 학생이다."
_ 가장 기억나는 제자가 있다면?
"12년 전에 거리의 아이들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는 일이 내게 맡겨졌다. 아이들을 찾아가 현악기를 주었더니 '이걸 왜 주냐? 팔라고 주냐'고 했다. '열다섯 살만 넘으면 집 밖으로 나가서 죽어야 하는 우리한테 음악을 왜 가르치느냐'는 아이도 있었다. 몇 명이 참여했는데 어느날 수업 중에 처음 보는 청소년 몇 명이 다가오더니 날카로운 필기구로 가슴을 찌르려고 했다. 다른 제자들이 막아서서 다치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면 거리에서 죽어야 한다는 아이가, 자기 패거리들이 음악수업에 가는 것을 싫어해서 꾸민 일이었다. 이 아이한테 가서 갱들의 말투로 설득을 했다. '네가 들어오면 목숨은 지키게 해 주마'라고. 결국 이 아이는 클라리넷을 익혀서 독일에까지 유학했다. 지금은 카라카스의 초로소 뉴클레오 담당자로 있다."
_ 엘 시스테마가 시작된 후 정부가 7번이나 바뀌었는데, 예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나?
"아브레우 선생님이 잘한 덕분이겠지만 예산을 걱정한 적이 없다."
선임기자 hssuh@hk.co.kr
사진=손용석기자 st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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