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목요일과 블랙 금요일에 안전 자산도 무너졌다. 자산시장의 댐이 무너지면서 자본이 시장에서 도피하는 상황이다.
시장불안을 호재로 하루 1~2%씩 고공 행진하던 국제 금값도 4일 하락세로 반전하며 극도의 시장 패닉을 보여줬다. 원유시장에선 투자자들이 앞다퉈 빠져나오며 서부텍사스산 중질유와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이 주식보다 큰 5%대 낙폭을 기록했다. 심리적 지지선마저 뚫린 뉴욕증시에선 투자자들이 믿을 것은 현금뿐이라며 '팔자'를 쏟아내 무려 140억주의 손바뀜이 발생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 수석투자전략가 샘 스토밸은 "바닥을 확인하기까지 2주 가량 걸릴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위험시기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한 것은 현금이었다. 은행에 자산운용이 어려울 만큼 현금이 몰려들자 마이너스 금리까지 출현했다. 미국 최대 보호예수은행인 뉴욕멜론은행은 이날 5,000만달러가 넘는 현금예치 고객에게 연간 0.13%의 수수료를 물리겠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밝혔다. 은행 측은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위험탈피 모드에 휩싸여 갑자기 현금예치가 폭증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현금자산이 몰리면서 은행의 현금자산은 올해 들어 83%(8,900억달러) 증가한 1조9,800억달러로 치솟았다. 미국 비금융 기업의 현금성 자산만 해도 1조2,400억달러로 전년에 비해 11.2% 증가했다고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집계했다. 애플은 한때 미 재무부보다 많은 764억달러의 현금자산을 보유했다. WSJ은 "특히 최근 2주 동안 기업, 투자기관들이 증권 등에서 돈을 빼내 저리에도 불구하고 원금보장이 되는 보호예수은행에 예치하고 있다"며 "마이너스 금리의 출현은 장기 금융위기의 또 다른 국면"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시장 위기로 달러화의 상대적 안전성이 높아지면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금 가운데 특히 안전한 화폐로 평가되는 일본 엔화나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급등하자 두 나라의 중앙은행은 추가 자금유입을 막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자국 통화를 외환시장에 풀고 있다.
변동성이 큰 화폐가치의 장기 전망을 불투명하게 보는 투자자들이 채권시장으로 몰려가 4일에는 1개월짜리 미 국채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반전했다. 또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2년여 만에 최대폭으로 하락하는 등 신용등급 강등 우려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인기를 되찾았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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