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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공영방송/ (중) 자율성 훼손에 제작진 폭발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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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공영방송/ (중) 자율성 훼손에 제작진 폭발 직전

입력
2011.08.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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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 눈치만 보는 낙하산 사장… 비판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4대강은 너무 많이 다뤘다고, 캠프캐럴 고엽제 매몰은 시청률 안 나온다고 막는다. 정권 비위 거스르는 아이템 검열하고 사회적 발언 좀 한다는 사람은 이상한 규정 만들어 출연을 막고, 공영방송은커녕 이게 방송사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최승호 MBC PD)

"(민주당 도청 의혹과 관련해) KBS인들이 자존심과 도덕성에 상처를 입게 된 건 모두가 품고 있는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진은 이 정당한 의구심에 단 한마디의 대답도 내놓지 못한 채 위기에 맞서려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정연욱 KBS 기자, 3일자 노보에 기고한 글에서)

KBS와 MBC 기자, PD들 사이에서 공영방송이 갈 길을 잃었다는 한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공영방송이 태생적으로 정부의 영향력에 취약한 구조라고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제작 자율성 침해를 넘어 자율성이 질식사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KBS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한) 정연주 사장 시절 때도 낙하산 논란은 있었지만 최소한 뭘 만들라 만들지 마라 하고 일일이 지시하는 일은 없었다"며 "이대로 가다간 공영방송 간판을 떼라는 얘기까지 나올 것 같다"고 우려했다.

조직 개편ㆍ인력 솎아내기로 통제

김인규 KBS 사장과 김재철 MBC 사장이 낙하산 논란 속에 취임할 때부터 제작 현장에 대한 통제 강화는 예견돼왔다. 김인규 사장은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월 '추적 60분' '생방송 심야토론' 등 시사 프로그램의 보도본부 이관을 포함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김재철 사장 역시 올 2월 연임이 확정되자 드라마국, 예능국, 시사교양국으로 이뤄졌던 제작본부를 드라마 예능본부로 통합하고 시사교양국을 따로 떼어 편성본부에 편입시켰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이 같은 편성-제작 분리 원칙 파기는 뉴스에서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한 사회고발 기능을 담당해온 PD저널리즘이 약화되는 부작용을 야기한다며, "결국 사장과 경영진에 의한 통제를 더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시사 PD들은 "조직 개편 이후 아이템 내부 검열이 더 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취재 아이템을 놓고 PD들과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지자 KBS MBC 경영진은 인사권을 휘둘렀다. MBC는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과 소망교회를 취재하던 최승호 PD 등 'PD수첩' PD 6명을 타 부서로 전출시켰다. 대신 투입한 이우환 PD도 '남북 경협 파탄 그 후 1년' 취재 중단 불응을 이유로 다시 비제작 부서로 전보 발령했고, 평PD협회를 대표해 이에 항의한 한학수 PD까지 시사교양국에서 쫓아냈다. 경영진은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고 강변했지만, 최근 법원에서 이들의 인사철회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KBS 역시 '추적 60분' 4대강 편 불방에 항의하는 플래카드를 사무실에 부착한 PD와 이를 막지 않은 담당데스크 등 3명을 징계했다. '추적 60분'의 한 PD는 "언론의 자유를 존재 기반으로 하는 언론사에서 언론 자유를 훼손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이슈에 의견을 개진하는 외부인사들의 출연 금지 조치도 강도를 더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실체 규명 없이 흐지부지 되고 만 KBS의 블랙리스트 논란에 이어 MBC는 지난달 사규에 고정출연제한 심의 조항을 신설해 교수 예술가 등 지식인들이 잇따라 MBC 출연거부를 선언하는 사태를 불렀다. 이 규정으로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패널로 출연 예정이던 배우 김여진씨와 수 년간 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온 시사평론가 김종배씨 등이 MBC에 출연할 수 없게 됐다. 대부분의 PD들은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김여진 등 불편한 인사 몇을 빼내기 위한 것"이라며 "대놓고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법을 안에서 막지 못해 부끄럽다"고 전했다. 앞서 4월에는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가 라디오본부장과 김재철 사장에게 직접적인 하차 압력을 받고 결국 자진 하차하기도 했다.

정부에 불리한 내용 현저히 줄어

일선 PD들은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지시나 간섭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MBC 시사교양국의 한 PD는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취재 의사를 밝혔다가 담당 부장에게 "그 아이템은 불가"라는 답을 들었으며 정 하려면 청문회 이후에나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MB 무릎기도 사건' '남북경제협력 중단 1년'에 이어 6월 말 방영 예정으로 예고편도 나간 'MBC 스페셜-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까지 불방되면서 제작진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 새노조)는 3일 발간한 노보에서 데스크의 정치권 눈치보기 때문에 공직자 또는 공직 후보자 검증과 비판 보도가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보는 '검찰 권력에 바싹 엎드린 KBS 뉴스'란 제목으로 권재진 법무장관 후보자와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 해명만 단신으로 보도한 것을 비판했다. KBS는 청와대 전 비서관의 부산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을 취재하고도 보도국장이 보도를 보류해 SBS에 특종을 뺏기기도 했다.

메인 뉴스마저 시청률 경쟁에 내몰리면서 지나치게 연성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MBC 주말 뉴스데스크는 오후 8시로 시간대를 옮긴 뒤 이른바 생활밀착형 기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비판기능이 심각하게 저해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KBS 기자협회 뉴스 모니터단도 연성ㆍ토막 리포트가 늘어난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KBS의 경우 관제성 프로그램이 부쩍 많아졌다. 주로 기자 PD들로 구성된 KBS 새노조는 지난 3월 '관제 특집의 습격'이라는 제목의 노보를 내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모두 177편의 관제방송이 나갔다고 비판했다. 이는 월 평균 11편 꼴로 KBS가 각종 모금방송과 G20 홍보, 천안함 특집 등 정부 홍보성 특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최근 6ㆍ25 특집으로 방송된 '전쟁과 군인' 역시 친일 인사 백선엽을 미화해 항일독립단체 등 시민사회단체가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김인규 사장 퇴진운동 서명에 나서는 등 강력 항의하고 있다. 김인규 사장의 지시로 제작 중인 이승만 특집의 경우 시민사회 단체들의 반대로 편성이 연기됐다.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KBS가 친일파를 비호하고 4·19로 쫓겨난 이승만을 미화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짓밟는 것이자 공영방송의 역할을 망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를 넘은 제작 자율성 침해는 결국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려 가뜩이나 방송에 대한 불신이 깊은 시청자들이 아예 등을 돌리게 할 수 있다. 황대준 KBS PD협회장은 "도청 의혹 사건 이후 제작 현장에서 국민과 대면하는 일이 무서워지고 있다고들 얘기한다"고 전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 외부 환경도 악화

공영방송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만만치 않다. 종합편성(종편)채널 출범이 임박하면서 KBS와 MBC가 지금보다 한층 더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휘둘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일보의 언론학자 설문 결과 종편이 방송 공영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이 83.3%(매우 부정적 26.2%, 부정적 57.1%)나 됐다.

당장 지상파 방송들은 한정된 광고시장을 놓고 종편과 경쟁을 해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 중간광고 허용, 편성비율과 심의기준 완화 등 종편이 각종 특혜를 받을 경우 공영방송 역시 이전투구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언론학자들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영방송이 기사 광고 맞교환 행위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광고가 잘 붙는 예능이나 드라마에 주력하고 시사 프로그램의 기업 비판 기능도 더 축소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종편 시청률을 대략 1%로 가정할 경우 종편 4개사가 연간 4,000억~4,800억원의 광고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정하면서 매체 간 '제로섬 게임' 상황을 우려했다. SBS가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를 통해 자사 소유 미디어렙(광고판매 대행사) 출범을 가시화하면서 MBC도 독자 미디어렙 구상을 구체화하는 등 광고시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나 심의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의 공영성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흔드는데 앞장 서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두 위원회 모두 과반수가 친여 인사들인데, 이들이 정부 편향적 결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심의해 제재를 가하는 방통심의위에 대해 박경신 심의위원 등은 "형식상은 독립기구이지만 구성과 운영을 보면 사실상 행정권이 주체가 된 검열 절차나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방통심의위는 지난달 7일 유성기업 파업 사태를 노조 편향적으로 보도했다며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홍기빈입니다'와 KBS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에 권고 조치를 내렸다. 또 백선엽 미화로 논란을 빚었던 KBS '전쟁과 군인'에 대해 문제없음 결정을 내리는 등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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