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즈쿠리(장인) 정신으로 집약되는 일본의 제조업계에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도호쿠(東北)대지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에 엔고까지 겹쳐 사상 유례없는 위기에 몰린 일본 제조업체들이 경영통폐합과 적자사업 철수 등을 통해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經)신문은 일본의 대표적 중공업회사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중공업이 합병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으며 2013년 4월 새 합병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두 회사의 연간 매출은 12조엔(162조원)으로 일본 제조업체로는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2위가 된다. 두 회사는 일단 보도 내용을 부인했으나 언론은 세부 조정이 늦어져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며 합병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히타치는 전력을 비롯한 사회인프라사업 및 정보기술(IT)시스템을 망라하는 세계 유일의 종합 전기회사로, 세계 각국이 설비 경쟁을 하는 스마트그리드(차세대 송전망) 등의 구축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원자력, 화력 등 발전 관련 기기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특히 풍력, 지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최강의 기술력을 가진 두 회사가 갑작스런 통합을 결정한 것은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여파로 주력 분야였던 원전플랜트 사업의 국내성장여부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급속한 엔고도 통합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일본 언론은 두 회사가 통합 이후 신흥국을 중심으로 진행중인 사회기반시설 확충 사업권 경쟁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세계의 인프라 투자는 2030년까지 41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히타치는 앞서 3일 TV를 자체 생산한 지 55년 만에 국내 생산라인을 완전 철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엔고로 인해 일본 생산 TV가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제품에 밀려 적자가 쌓이자 내린 결정이다. 파나소닉도 자회사인 산요의 세탁기와 냉장고 사업을 중국가전업체 하이얼에 매각하고 일본과 동남아 가전 사업에서 완전 철수키로 하는 등 일본 제조업체의 통폐합이 잇따르고 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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