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예술철학을 갖고 오랜 시간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활동을 펼쳐온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만나 볼 수 있는 전시 'STUDY'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모빌'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를 비롯해 정현 양대원 김명숙 김정욱 등 작가 10명의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에서 그들이 몰입한 철학적인 주제를 음미하는 것은 물론 작업 자세와 탐구 과정을 배울 기회도 된다.
밀레와 세잔 등의 명화를 모사해 거장의 작가적 태도와 정신을 탐구해온 김명숙은 밀레의 그림을 재료만 달리해 모사한 '키질하는 사람'을 선보였다. 캔버스 위에 거칠게 목탄으로 그린 작품에서 작업을 농사일에 비유하며 고된 노동을 통해 수확을 일구고자 하는 작가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재료 고유의 특징을 살려 작업하는 조각가 정현은 2007년 창작한 철로용 침목(枕木) 작품을 전시했다. 7년만에 내놓았던 이 침목 작품은 인간군상을 나타내는 동시에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재료의 속성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하찮아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낸 사물의 에너지를 담았다. 정씨는 "힘이나 에너지는 그것을 표현하려고 해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근원과 깊이를 찾아 가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현대인의 일상에 관심 두어온 박혜수는 카페와 거리에서 엿들은 다양한 대화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일상대화를 모아 이를 여성학자, 심리학자, 점술가, 조향사 등 각 분야 전문가에게 들려주고 해석하도록 했다. 10대 여고생들의 대화를 갖고 조향사는 향수를 만들고, 노인들의 대화를 들은 의사는 '노인 자살 위험증후군'이라고 진단하는 식이다. 사소한 일상을 유심히 관찰해 작품으로 옮기는 작가의 탐구정신이 돋보인다.
이밖에 색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고낙범의 그림과 칼더의 모빌 등도 흥미롭다. 전시된 30여 점의 작품은 장르는 다르지만 작가들이 작품으로 수양하는 연구자들 같아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전시는 9월2일까지. (02)736-4371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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