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방미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미국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의 방미는 북한과 미국의 오랜 교착상태가 끝나고 드디어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변화의 상징으로 읽혀진다. 지난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남북 6자회담 대표간의 회동 및 외교장관간의 비공식 접촉 등이 이루어지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급기야는 북미간 전격적인 회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써 6자회담의 3단계 해법인 '남북대화 - 북미대화 - 6자회담 재개'의 1, 2단계가 어느 정도 충족된 셈이다. 아직 6자회담의 재개를 낙관하기에는 이르지만, 분명 좋은 조짐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질질 끌려 다니는 한국 정부
김계관과 보즈워스의 회담 이후, 양측 모두 회담에 대해 만족스러운 입장을 표명한 것을 보면 북미 회담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남북대화는 어떤가.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서의 회동 이후, 금강산 관광에 대한 우리의 대화 제안이 있었지만 북한의 '사실상' 거부에 의해 무산되었다. 오히려 북한은 '3주간'의 여유를 주면서 금강산 지구의 우리 재산에 대해 자신들의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밝히고 나왔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대화에 대한 기대를 사실상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우리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없다면, 금강산 관광은 재개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의 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의 남북 회동이 남북관계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 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듯이, 그 동안 미국은 남북대화가 이루어져야 북미대화와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고 밝혀왔고, 최근 들어 우리 정부에게 남북대화를 재개하도록 종용해왔다.
그리고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의 남북 회동이 이루어지자 지체 없이 북미회동을 추진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그 동안 북미대화에 공을 들여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의 북미회동은 양측이 남북의 회동을 명분삼아 곧바로 양자간 회담에 들어섰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북한도 남북대화보다는 북미대화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대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우리 정부가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2007년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방미 시 보여주었던 미국의 '환대'에 비하면, 이번의 방미에서 보여주고 있는 미국의 태도는 신중하다 못해 일상적인 실무적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이는 이번의 북미접촉이 탐색적 성격이라는 것에 더해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를 의식한 조처로 여겨진다. 그만큼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의 '배려'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미국이 언제까지 우리 정부를 배려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역시 산적한 국내 문제의 해결, 그리고 외교적인 성과가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의식하여 북한 문제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는 동기가 점점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조치로 대화 주도해야
현재 북한과 미국은 자리를 마주하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대화로 들어서고자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남북은 얼굴도 마주하지 못한 채 공방만을 주고받고 있다. 자칫하면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의 국면에서 과거 일본이 그러했듯이 아무런 역할도 못한 채 끌려다닐 수도 있다. 최근 북미대화가 이루어지자 일본도 슬그머니 북한과 접촉을 가졌다고 한다. 변화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일본의 의도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마침 8ㆍ15 광복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해 뭔가 전향적인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오늘의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우리 정부의 전략적인 조치가 절실한 때라 여겨진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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