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로 급경사지 방재시스템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할 서초구청과 산림청은 산사태 예보 단문메시지(SMS)를 "보냈다, 안 받았다"는 말싸움만 벌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시스템이 재해 예방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다. 예보 문자를 받은 지자체의 재해 대비 실행 매뉴얼과 방재당국의 감독 등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산사태 예보 시스템은 있지만
산림청은 산림과학원과 함께 산사태 위험지관리시스템을 개발, 2007년부터 운영 중이다. 특히 기상청 기상정보 서버와 연결돼 실시간으로 강우량 정보를 받아 분석한 후 해당 지역이 산사태 위험기준에 도달하면 각 지자체 방재 담당자에게 문자메시지를 자동 발송한다.
시스템의 산사태 위험 판단 기준은 누적 강우량, 하루 강우량, 시간 강우량 등 모두 3가지. 각 지역별로 강우량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산사태 주의보나 경보 메시지가 나가는 식이다. 메시지는 "귀 관할구역은 산사태위험주의보(또는 경보)발령 대상지역입니다. 11년 0월0일 00:00 예보"로 표시된다. 문제는 메시지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지자체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는 점이다. 예산을 들여 시스템을 갖췄지만 실제 활용은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자체, 방재당국 대응은 낙제
관할지역에 산이 많은 서울 성북구 관계자는 "비만 내리면 오는 메시지고, 그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아 일일이 대응을 할 수 없다"며 "각 동에 산사태 예보 공문 하나 보내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관악구 관계자는 "산림청에서 온 메시지는 구속력이 없다. 다만 경각심을 갖게 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결국 두루뭉술한 산사태 예보 메시지가 지자체의 구체적인 행정조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우리가 그 수준으로 통보하면 구체적인 사항은 각 지자체에서 실제 상황을 감안해 움직이도록 돼 있다"며 "우리가 지자체에 관련 지시를 내릴 권한과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관련 규정(급경사지 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각 지자체 장은 산림청 등에서 제공하는 이 같은 정보와 함께 상시 계측 관리 결과와 강수량, 비탈면의 상태 등을 고려해 주민 대피를 위한 관리 기준을 제정 운용해야 한다. 하지만 큰 인명 피해가 난 서초구는 물론 산을 끼고 있는 관악 성북 중구 등 어느 곳 하나 산사태에 대비한 주민 대피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규정 위반이다.
이러한 지자체의 태만과 안전불감증은 감독기관의 무신경에서 비롯됐다. 소방방재청은 각 지자체의 산사태 대비 대피 매뉴얼의 제작과 운용을 감독해야 하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성북구 관계자는 "산사태 관련 매뉴얼 제작을 지시 받은 적도 없고, 구 차원의 매뉴얼도 없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해마다 중앙합동점검을 하고 있지만 전수 점검은 사실상 불가능해 누락된 거 같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방재당국의 협업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전=허택회기자 thheo@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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