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한달 반(정확하게는 47일)째 외유중이다.
지난 6월17일 출국한 뒤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노사갈등 차원을 넘어 정치권과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한 국가적 이슈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은 소재 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사태수습의 최종 책임과 권한을 가진 조 회장의 무책임한 '도피성 장기외유'에 대한 비난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제2의 정태수' '제2의 김우중'이란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조 회장이 출국 한 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 그의 출석을 결정한 날이었다. 환노위는 6월17일 회의에서 그에게 닷새 뒤 출석할 것을 요구했지만, 조 회장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이미 출국 후인 20일에서야 공문을 통해 "7월2일까지 일본, 유럽 등으로 출장을 가는 바람에 국회 출석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조 회장의 행방은 현재 오리무중이다. 약속한 7월 2일에 귀국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회사측도 그의 동선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으며, 실제 일부 핵심인사만이 소재를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중공업측은 "현재 싱가포르, 일본 등지를 다니며 외국 선주사 및 선박 기자재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수주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조 회장이 입국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진중공업 조선소가 있는 필리핀 수빅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이 역시 정확하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실 기업인들의 도피성 해외출장은 조 회장이 처음은 아니다. 불미스런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수사가 시작됐을 때, 국회가 부를 때면 어김없이 '해외 수주'를 이유로 장기간 외유에 나선 기업인은 한 둘이 아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경우 2007년5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강릉 영동대의 교비 횡령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출국한 뒤, 현재 4년 넘게 해외 도피중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대우 해체 이후 검찰 수사를 피해 1999년 출국했다가 2005년에야 귀국했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도 지난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출국했다가 넉달 만에 귀국한 바 있다.
노동계나 시민단체는 물론 재계에서조차 그의 무책임한 외유를 보는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김진숙씨의 크레인 농성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한진중공업 사태가 이미 정치사회적 핵심이슈로 떠올랐는데 기업의 최고책임자가 계속 외국에 머물고 있는 건 결코 책임있는 기업인의 모습이 아니다"며 "이런 부분 때문에 반재벌정서, 반기업정서가 확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여야 막론하고 그의 귀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1일 "김진숙씨가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조남호 회장을 출석시켜 청문회를 열면 문제가 풀리게 돼 있다"면서 조 회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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