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에 정통했던 신학자 칼 바르트는 "모차르트의 작품 가운데 삶의 기본음인 A음을 주조로 한 곡에서 삶의 풍성함을 느낀다"고 자신의 저서에 쓴 적이 있다. 지난달 30일 지휘자 성시연(35), 피아니스트 손열음(25)이 대관령국제음악제(GMMFS) 현장인 알펜시아홀에서 협연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3번 A장조는 문득 그 통찰을 상기시켰다. 객석은 홀린 듯 일어나 손바닥에 불이 나게 박수를 쳤고, 음악의 풍성함에 감사했다.
'마술피리' 서곡으로 막을 올리면서 성시연은 지휘봉 없이 큰 동작으로 제1 바이올린에서 콘트라베이스까지를 장악해 갔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에서 두 사람이 빚어내는 상승 효과는 서서히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주를 마치고 돌아서는 손열음에게 보내는 열광은 대관령을 날릴 듯했다.
엄청난 환호에 손열음은 예정에 없던 곡을 답으로 연주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3악장, 일명'터키 행진곡'으로 더 잘 통하는 작품의 변주곡 두 편이 잇달아 나왔다. 1부가 끝났다. 15분 휴식 시간은 지친 손열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분장도 채 못 지운 손열음은 서울에서 따라온 방송팀이 비추는 강렬한 조명 아래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다.
2부가 시작됐다. 30여명의 혼성 합창단이 정숙하게 들어오는 것을 보며 객석은 다음 순서가 망자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임을 떠올렸다. 서울모테트합창단과 GMMFS오케스트라를 등지고 박지현(소프라노), 강요셉(테너) 등 4명의 독창자가 객석을 향해 자리잡았고 성시연은 그 사이의 공간에서 객석을 등지고 섰다. 장엄한 '키리에'(긍휼히 여기소서)를 시작으로 모차르트 최후의 작품'레퀴엠'(K.626)이 흘러나왔다. 대관령의 고요에 홀의 잔향감이 겹친 알펜시아홀은 피안의 공간으로 살아났다.
그 날의 주인공은 새 스타인웨이 피아노였을까, 두 여인이었을까, 연습에 몰두해온 단원들이었을까, 숨을 죽이다 피날레 후에야 뜨겁게 환호하던 청중이었을까, 아니면 대관령의 맑은 공기였을까. 630석 홀을 가득 채운 관객, 미처 입장하지 못하고 홀의 모니터에서 눈을 못 떼던 사람들, FM 라디오 실황 청취자…. 모두가 제 8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승자일 것이다.
평창 =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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