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첫 항공모함이 시험 운항을 앞둔 모양이다. 원래 옛 소련이 건조, 1988년 진수(進水)한 쿠즈네초프급 항모 바랴크(Varyag)다. 만재톤수 6만 6,400톤에 길이 300m나 되지만, 소련이 망하는 바람에 취역조차 못하고 1992년 폐기됐다. 엔진과 키(舵)까지 해체된 껍데기 배를 1998년 홍콩 여행사가 해상 카지노로 개조하겠다며 2,000만 달러에 샀다. 그러나 중국은 2002년부터 다롄(大連) 조선소에서 다시 항모로 복원했다. 그 긴 세월 온갖 추측에도 침묵하던 중국 국방부는 지난 주, 항모 건조를 공식 확인했다.
■ 중국은 이 항모에 대만을 정벌한 청(淸)나라 제독 시량(施琅)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현대화 전략의 1차 목표가 일본-대만-필리핀을 잇는 선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임에 비춰 그럴 듯하다. 그러나 한족 명(明)의 장수이던 시량이 만주족에 귀부(歸附)한 배신자라는 사실을 들어 믿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애초 항모 바랴크 이름에는 영욕이 엇갈린 기구한 역사가 담겨 있다. 처음 그리 부른 제정 러시아 순양함은 1904년 러ㆍ일 전쟁 때 제물포 해전에서 불굴의 투지를 과시, 러시아 해군의 전설이 됐다.
■ 순양함 바랴크는 일본 순양함 6척과 홀로 맞서다 나포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배 밑에 구멍을 뚫어 침몰했다. 일본은 배를 인양, 소야(宗谷)로 이름을 바꿔 쓰다 1916년 되돌려줬다. 바랴크는 1차 대전 때 수리 중 영국 해군에 나포돼 독일에 팔렸다가 1925년 침몰했다. 이 전설적 이름을 되살린 것은 소련 붕괴 뒤 배를 차지한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민족의 뿌리 루스(Rus)족의 적통(嫡統)을 자부한다. 바랴크는 루스족의 원조 바랑기아인(Varangian)을 가리킨다.
■ 항모 바랴크는 중국의 손에 넘어온 뒤에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흑해에서 예인,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려 했으나 터키 정부는 배가 너무 커 위험하다며 1년 반이나 막았다. 이집트도 수에즈 운하 이용을 불허, 멀리 희망봉을 돌아오느라 석 달이나 걸렸다. 이 때 이미 서방의 견제가 작용했다. 첫 항모 등장에'중국의 위협'경고가 한층 요란하다. 중국은"작은 나라 태국도 항모가 있다"며 "바랴크는 훈련용"이라고 항변한다. 어쨌든 중국 해군력 위협을 마냥 부풀릴 건 아니다. 재래식 항모 1척은 미국의 10만 톤 급 핵추진 항모 10척에 견줄 게 못 된다. 핵잠수함과 수상함 전력도 기껏해야 그 수준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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