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다 만나는 예절 없는 젊은이들. 먼저 길에서다. 사람이 많아 그대로 걷다가는 분명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친다. 그래도 몸을 살짝 옆으로 틀거나 비키지 않는다. '탁'밀치고는 그냥 간다. 더구나 좁은 골목에서 서너 명이 옆으로 서서는 천천히 걷는다. 겨우 사이를 빠져나가 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휴대폰 통화와 떠드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대부분 잡담이고, 대화 속에는 욕설이 뒤섞인다. 참다못해 눈을 흘겨도 소용없다. 옆자리가 비어 앉으려 해도 '떡'벌린 두 다리를 오므릴 줄 모른 채 '달달' 떨고 있어 영 불편하다.
■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상가 출입문을 지나간다. 그런데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잠시(1초) 문을 손으로 잡아주는 젊은이들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문을 잡아주니까 손도 '까닥' 안하고 잽싸게 자기만 들어와 버리는 젊은 여성도 있다. 한번 세어보았다. 일곱 번째야 한 청년이 뒤를 보며 문을 잠시 잡아준다. 지하철에서도 자리 양보는 없어진 지 오래다. 이제는 자는 척도 않는다. 앞에 누가 서 있건 열심히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앉아서 동영상만 본다. 어디에 막말남, 막말녀가 앉아 있을지 몰라 그나마 선뜻 자리 양보를 요구하지도 못한다.
■ 일본 지하철은 우리보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어도 조용하다. 휴대폰 통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속삭이듯 말하며, 급한 일이 아니면 지하철 내려서 다시 통화하자고 말하고는 끊는다. 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길게는 30분 넘게 휴대폰으로 수다를 떨거나 지하철이 제 집인 양, 온갖 도구를 꺼내놓고는 긴 시간 화장을 한다. 정말 열차가 급정거해 화장이 엉망이 됐으면 하고 바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나 싫었으면 임철순 한국일보 주필은 에서 그런 '환장녀'를 만나면 '확'하고 살의까지 느낀다고 과장했을까.
■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가 최근 지하철 막말남의 사례를 들며 한국 젊은이들에게서 예절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문화에서 특히 중시되는 것으로'나이'를 언급했다. 예절 상실은 그것의 권위와 우선권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예절이야말로 '나이'만 앞세운 사회적 억압과 강요로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대접만 받으려는'염치 없는'어른들이다. 예절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예절은 습관이다. 눈으로 보고, 몸과 마음으로 따라 하는 것이다. 50대가 80대에게 자리를 내주자, 젊은이들이 앞다퉈 일어나듯이.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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