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채증액 협상이 막판 타협안을 도출해 한숨은 덜었지만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난맥상은 미 정치권에 큰 상처로 남을 전망이다. 특히 내년 재선에 도전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을 거치며 정치적 손익이 다소 복잡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부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중간선거 패배 이후 공화당에 보여온 약한 모습이 이번에 다시 드러났다"며 "지지세력인 진보세력은 물론 대선 승패에 가장 중요한 무당파들을 설득하는데 난관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유층 감세 중단 철회가 역시 가장 타격이 컸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이번에 도출된 타협안보다 훨씬 큰 규모의 재정적자 감축을 시도했다. 적자를 최대한 줄여야만 부채 증액의 여지가 커지고 이렇게 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출을 줄여 적자폭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세수 증대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증세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반발에 막혀 재정적자 감축 협상이 '스몰 딜'로 축소되고 부채상한 규모도 줄어들었는데 이는 일자리 창출 등 경기부양에 대한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흑인 민권 운동가 재시 잭슨 목사는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이 자신을 파괴하는데 얼마나 단호한지를 모르고 있다"며 "그의 유화적인 태도 때문에 협상이 보수적으로 흘렀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 등은 사설을 통해 "공화당의 요구에 굴복한 절름발이 협상" "전혀 자랑스러워 할 해결책이 아니다"고 혹평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1994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뒤 재정적자, 복지문제 등에서 오른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철회, 부유층 감세 연장, 아프간 전황 악화 등으로 진보세력의 불신이 이미 커진 상황에서 또다시 '부실한 재정적자 협상' 비난에 직면함으로써 재선 승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클린턴 대통령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내년 대선을 앞둔 오바마에게 이번 합의가 부동표를 흡수할 수 있는 승리전략이 될 수 있다며 긍정적 분석을 내놓았다.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의장도 이번 협상의 패배자로 기록된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세수증대를 포함한 4조달러의 규모의 '빅 딜'을 추진했으나 당내 2인자인 에릭 캔터 원내대표의 반발에 막혀 이를 철회하는 수모를 겪었다. 자신이 마련한 부채 2단계 증액안도 소속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해 표결이 연기되는 등 지도력에 손상을 입었다. 반면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디폴트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백악관과의 담판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 이번 협상의 최대 승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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