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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멍드는 미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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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멍드는 미국정치

입력
2011.07.3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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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4일이 미국의 가장 우울한 독립기념일이라는 여론조사 발표가 있었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국력이 쇠퇴했다고 믿는 사람이 3분의 2를 넘었고, 경제가 안보 이상의 불안요인이라고 꼽은 사람도 75%에 달했다.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업률이 4년째 9%대 이상의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불과 한해 전만 해도 미국민은 '미국은 특별하다'는 '예외주의'를 의심치 않았다. 77%가 '잘못이 어디에 있든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정부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7년 전인 2004년 의식조사에서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시민으로 살겠다'는 대답이 74%를 넘었다. 비교대상으로 언급된 캐나다(58%), 한국(37%), 독일(18%)보다 훨씬 높았다.

역대 가장 우울한 독립기념일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미국민이 1년만에 가장 우울한 독립기념일을 보낸 것은 그 사이 경제지표가 더 나빠져서가 아니다. 언젠가는 상황을 반전시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탓이다. 거기에는 재정적자 감축과 국가부채 증액을 둘러싼 백악관과 여야의 난맥상이 자리잡고 있다. 언론은 매일 중계방송하듯 하고 정부는 다른 현안은 제쳐둔 채 적자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올인했으며 여야는 소모적 정쟁만 계속하고 있으니 외국인이 보기에도 딱하기 그지 없다. 그 사이 죽어나는 것은 국민뿐이다.

재정적자 협상에 대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을 더 이상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런 흉흉해진 민심과 같은 맥락이다. 진보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반동주의자'이고, 보수는 기존 가치를 무너뜨리려는 '급진주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복지 시스템 축소에 결사 반대하는 민주당은 '큰 정부'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1940~60년대처럼 여전히 '정부만능주의'에 빠져있고, 정부지출 대폭 삭감 등 경제ㆍ예산 시스템의 대대적인 수술을 주장하는 공화당은 기존 제도를 무너뜨리려는데 급급한 '파괴주의자'라는 것을 고상하게 빗댄 말이다. 이대로라면 '개혁=민주, 보수=공화'라는 전통적 이념구도가 완전히 뒤집어져 누가 진보이고 보수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미 언론들은 '현실에 대한 부정'이라고 해석한다. 지금 미국이 처한 상황이 한편에서는 '흘러간 옛날에 대한 동경'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장담할 수 없는 과격함'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이런 민심을 약삭빠르게 잘 파고 드는 후보가 공화당의 경선 선두주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이다. 마치 자신이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것처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집중 공격하는데 혼신을 쏟는다. 따라 하기라도 하듯 오바마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뒤쫓아가 '경제를 망쳤느니'하면서 그를 흠집내기에 바쁘다. 펜실베이니아, 아이오와 등 오바마가 가 있는 인근에서 하루 전이나 뒤 맞불작전을 벌이는 롬니를 두고 언론들은 '오바마 훼방놓기'라고 꼬집는다.

현실은 없고 환상만 있다

예전 같으면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지금 같은 때는 당내 라이벌을 견제해 당 후보가 되는 게 급선무인데, 다른 후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투이다. 롬니가 노리는 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이다. 이런 민심이 귀결되는 곳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일 수 밖에 없고, 그런 대통령과 대거리함으로써 자신이 대안일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롬니의 전법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리더인 미국의 정치가 멍들고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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