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매일 아이 생활을 기록하는 수첩에 최근 교사가 "요즘 부쩍 미술활동을 좋아하네요"라고 적어 보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색연필이나 크레파스 들고 그림 그리는 놀이에 별 흥미를 못 느꼈던 우리 아이가 40개월 전후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선 따라 그리기나 도형 색칠하기에 짧게나마 집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아예 책도 몇 권 샀다. 도형이나 사물, 글씨가 그려져 있어 따라 쓰거나 색칠할 수 있는 책이다. 삐뚤삐뚤 그릴 땐 "에이, 이게 뭐야"하면서 놀려주고, 똑바로 그릴 땐 "우와, 진짜 잘 했네"하며 칭찬해주면 아이는 더 재미있어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이가 동그라미를 그린다는 거다. 완전히 둥글진 않지만 그래도 딱 보면 원을 그린 거구나 알 수 있다.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게 되는 평균 나이는 만3세란다. 어른 눈높이에선 그게 뭐 그리 어려울까 싶지만, 사실 시작점과 끝점을 딱 맞춰 둥근 모양을 만드는 건 아주 세밀한 손놀림이 필요한 작업이다.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손가락을 조금씩 벌리거나 약간만 모으거나 살짝 엇갈리게 하는 움직임은 손등이나 손바닥에 있는 여러 개의 작은 근육이 함께 만들어낸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만3세 정도는 돼야 이런 소근육(내인근)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손가락을 구부리고 펴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큰 움직임은 손이 아닌 팔뚝에 있는 근육이 만든다. 이런 대근육(외인근)은 소근육보다 더 어린 나이부터 발달하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 발달한다. 40~50대도 운동을 하면 손아귀 힘이 점점 세질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소근육은 어릴 때 주로 발달한다. 박승준 부평힘찬병원 부원장은 "바이올린처럼 미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악기를 나이 들어 배우기 쉽지 않은 게 바로 이 때문"이라며 "레고처럼 작은 부품을 다루는 장난감이나 퍼즐 맞추기, 그림 그리기, 글씨 쓰기 등이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소근육 발달이 중요한 이유는 뇌의 인지능력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선을 따라 긋고 색칠을 하고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고사리손은 뇌와 본격적인 소통을 시작하게 된다.
최근 미국 인디애나주가 9월부터 초등학교에서 글씨쓰기 과목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손글씨 대신 타이핑을 필수과목으로 선택했단다. 정신문화와 인간성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디지털과 기술문명에 매몰될 거라는 우려는 둘째 치고,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게 아이들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간과한 결정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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