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76명의 생명을 거리낌없이 앗아간 노르웨이 연쇄테러 용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 그가 평소 폭력적 게임을 즐겨 왔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게임과 범죄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많다. 인간의 범죄와 게임과의 연관성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브레이비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가장 즐기는 게임으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 가운데 '노 러시안' 미션을 꼽았다. 이 게임에서 게이머는 테러 조직의 일원으로 러시아의 한 공항에 들어가 민간인 수백명에게 총기를 무차별 난사, 학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보도가 나오자 전문가들은 게임에 집중포화를 때렸다. 스웨덴 국방대 비대칭위협연구소장 마그누스 란스토르프는 "브레이비크가 인터넷에 올린 범행선언문의 내용을 살펴볼 때 그는 가상세계에 빠져 현실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범죄학자인 영국 버밍엄시티대 데이비드 윌슨 교수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차량 폭탄이 정부청사를 목표로 했고 총기 난사는 집권당 청년캠프 현장에서 자행된 점으로 미뤄 정치적 동기는 분명해 보인다"며 "개인적 동기는 현 단계에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페이스북에서 '콜 오브 듀티' 게임을 즐긴다고 소개한 것으로 보아 이것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문가들도 지난해 서울에서 발생한 게임중독 미국 명문대 중퇴생의 묻지마 살인 사건과 부산에서 터진 게임중독 중학생의 어머니 살해 사건 등을 꼽으며 여기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게임 관련 기관이나 업계 등의 입장은 다르다. 그런 식의 인식은 너무 단선적이라는 얘기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게임은 너무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어서 청소년 등이 탐닉하면 살인 자살 가출 절도 같은 사건을 저지르게 된다는 마녀사냥 식의 논리가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며 "그러나 게임 효과 연구에서 자극에 대한 즉각적 반응(자극이론)이나 학습효과(사회학습이론)로 인해 게임이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단편적 시각은 많이 퇴색했고, 연구 방법론 측면에서는 이런 부정적 효과를 측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학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은 폭력적 게임의 미성년자에 대한 판매 금지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는데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등과 같은 수많은 명작 동화에도 심각한 폭력적 내용이 담겨 있고,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과의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게임의 정신건강학적 유용성도 강조한다. 한 게임 개발자는 "사람이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일상에서 벗어나 놀고 즐기며 재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생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하면서 살 수 있겠는가. 틈틈이 놀면서 공부하게 마련이고 그래야 효과적이다. 그게 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이 그 사용자가 2,000만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현대의 놀이가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게임에 빠져 사고를 칠 수 있는 청소년 고위험군이 많게는 150만명, 적어도 10만명이나 된다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긍정하지 않는다. 게임문화재단 관계자는 "그렇다면 인구 10만명당 500~7,500명이 병에 걸려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사회는 초대형 변고 속에서 벌써 붕괴됐어야 한다"며 "게임의 부작용이 과장되거나 오도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 게임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일방적으로 과장하거나, 게임의 범죄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그냥 놔두면 된다고 하는 것은 모두 위험한 주장이다. 따라서 정답은 그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한다. 규제 역시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유지해야 한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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