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경제/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지음·김정혜 옮김/한빛비즈 발행·708쪽·2만5,000원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니얼 퍼거슨이 이 책에서 은유한대로 우리는 '금융 행성'이라는 또 다른 천체에서 살았던 걸까.
행성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난 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이다. 이 행성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주택의 미래 가격에 투기할 목적으로 수십억 달러를 빌린 다음, 이 거래를 발판으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온갖 유가증권과 파생상품으로 거대한 역피라이드를 쌓는 것'이다. 역피라미드가 언젠가 무너진다는 것은 모두 알지만 이 같은 피라미드 쌓기를 부추기는 인간의 '욕망'은 그것이 진짜 무너져 내릴 때까지 '이성'을 압도했다. 그 정체가 밝혀진 뒤 '금융 행성'을 떠나 지구에 돌아온 사람들에게 비로소 그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집단 망상처럼' 보일 뿐이었다.
<눈 먼 자들의 경제> 는 퍼거슨 교수를 비롯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 학자들과 미국의 언론인, 작가들이 쓴 미국발 금융위기 현장 보고서다. 금융위기가 터진 뒤인 2008년 말부터 2009년까지 각자가 쓴 18편의 글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몰락 과정, 금융위기 이후 퍼부어진 구제금융의 실체, 아이슬란드 등의 국가부도, 역사상 최대의 다단계 금융사기극을 벌인 메이도프 이야기 등 4가지 주제로 나누어 엮었다. 눈>
대부분의 글이 금융위기의 현장과 그 이면에서 벌어진 일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어 우선 읽는 재미가 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도널드 발렛 등은 금융위기 후 구제금융을 다룬 글에서 한 의원의 말을 인용해 미 재무부의 구제금융 기본 전략이 "돈을 가져가서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혹평한다. 국가 부도에 이른 아이슬란드의 은행 거래를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애완동물 값을 10억 달러로 하자고 약속하고 둘을 바꿔 10억 자산가가 되는 상황에 빗댄 글도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금융위기를 부른 여러 실수들은 '시장이 자기조정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정부의 역할은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망상에서 깨어났지만 '금융 행성'은 정말 종말을 고한 걸까. 이 책이 암시하는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위기를 이겨낸 투자은행들은 여전히 막대한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고 금융투자상품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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