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경제와 사람/ 입소문 마케팅 업체와 기업·포털 검은 결탁이 돈장사 하는 파워블로거 뒤에 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경제와 사람/ 입소문 마케팅 업체와 기업·포털 검은 결탁이 돈장사 하는 파워블로거 뒤에 있다

입력
2011.07.29 01:04
0 0

블로거 A씨는 ‘네이버 파워블로거’다. 하루 방문자가 만명이 넘는다는 요리나 생활 등 다른 분야 파워블로거와 달리, A씨의 블로그는 주제도 좀 무겁고 해서 방문객 수도 하루 1,000~2,000명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그는 2~3일에 한번 꼴로 입소문마케팅 업체의 제안을 받는다. 특정 업체나 브랜드를 홍보하는 글을 올려 주면 원고료를 주거나 해외여행을 보내 주겠다는 제안이다.

하지만 A씨는 이러한 제안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차라리 정식으로 배너광고를 다는 것이면 모를까, 광고가 아닌 척 광고 글을 올리면서 ‘광고료’도 아닌 ‘원고료’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는 것이 양심에 꺼려지기 때문이다. A씨는 “순수하게 운영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자꾸 이런 요청이 들어오니 종종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베비로즈’ 사태 이후 일부 파워블로거의 지나친 상업화가 논란이 되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가이드라인 발표와 국세청의 세무조사 방침 등이 발표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베비로즈 사태란 네이버 파워블로거인 베비로즈가 ‘깨끄미’라는 오존 살균세척제를 이웃들에게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개당 20%씩 총 2억1,000만원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밝히면서 벌어진 파워블로거의 상업화 논란이다.

하지만 뜻 있는 블로거들은 이번 사태를 몇몇 파워블로거의 부도덕성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들에게 대가를 주고 체험을 가장한 광고 글을 올리도록 부추기는 입소문마케팅 업체 ▦이들을 활용해 손쉽게 신제품을 홍보하려는 기업들 ▦인기 블로거들에게 ‘파워블로거’라는 훈장을 주고 그들의 상업화를 조장한 포털사이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태의 본질은 파워블로거-입소문마케팅업체-기업-포털로 단단하게 이어져 있는 4각의 검은 공생구조이며, 이 고리를 해체하지 않는 한 제2의 베비로즈는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 같은 형태의 ‘파워블로거 입소문 마케팅’이 시작된 것은 2005년 전후다. 아이디어는 당시 홍보ㆍ마케팅ㆍ광고대행 업계에 새롭게 생겨난 소규모의 입소문마케팅 업체들이 먼저 냈다. 이들은 깐깐한 소비자들이 물건이나 식품을 구매할 때 인터넷 검색으로 다른 사용자들의 리뷰(사용후기)를 먼저 본 후 고른다는 점에 착안, 소비재 중심 기업들과 방문자 수가 많고 충성도가 높은 ‘블로그 이웃’들을 거느리고 있는 ‘와이프로거’들을 이어주는 사업모델을 고안해 냈다. 와이프로거란 와이프+블로거의 조어로, 주로 요리법이나 생활의 지혜를 자주 올리는 주부 블로거들을 가리킨다.

B사 제품을 입소문마케팅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파워블로거 C와 1주일에 2~3회 정도 해당 상품을 교묘히 홍보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연 1,000만~2,000만원 가량을 월급 형태로 지급하는 형태의 계약을 한다. C는 해당 상품을 노골적으로 홍보하기 보다는, 그 상품을 활용한 요리 레시피를 올리면서 그 상품의 효능을 강조하는 문구를 곳곳에 삽입하는 식으로 글을 올린다.

다음으로 C가 이웃들을 대상으로 B 제품 체험단을 모집하는 이벤트를 개최한다. C를 추종하는 수많은 주부들이 B 상품 샘플을 얻기 위해 이벤트에 참가한다. 그러면 C는 댓글을 올린 이웃 중 몇 명을 골라 샘플을 보내주고, 그 샘플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블로그에 “파워블로거 C씨가 보내주신 B사 샘플”이라며 “써보니 매우 좋다”는 글을 올린다. 파워블로거 한 사람과 계약함으로써 B사 상품에 대한 호평이 인터넷에 넘치게 되는 셈이다. 이제 B사 상품을 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검색하려는 사람들은 포털 사이트에서 오로지 호평만 보게 된다. B사는 입소문마케팅에 성공한 것이다.

사실 이는 B사 상품에 대한 혹평이나 비판을 안 보이게 하고 호평만 남기는 일종의 ‘평판 조작’이다. 사용후기를 가장한 정교한 간접광고다. 실제로 입소문마케팅 업체나 홍보를 원하는 소비재 업체 모두 이를 알고 있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효과가 나타나자 애써 이 사실을 외면했고 오히려 조장했다. 블로그컨설팅 업체인 미디어유의 이지선 대표는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많은 기업들이 블로그나 여타의 소셜 미디어를 소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무작정 기업에 유리한 홍보성 메시지를 전달하는 채널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털의 경우, 물론 이런 평판조작에 직접 간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블로그의 상업화’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네이버의 경우 처음에는 유명 블로거들이 광고를 달거나 수익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파워블로거 문모씨 등이 강하게 항의한 후로 오히려 파워블로거의 수익사업을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네이버가 ‘파워블로거’ 1,300명을 선정하자, 이 배지를 단 블로거는 입소문 마케팅 업체의 주된 타깃이 됐다.

물론 모든 파워블로거가 이렇게 ‘1인 기업’이면서도 아닌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아니다. 입소문마케팅 업체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광고나 협찬 제안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거절하는 파워블로거들도 상당수 있다.

요리 레시피를 주로 올리는 ‘엔지니어66’ 블로그에는 흔한 배너광고 하나 없다. 또 광고는 배너광고로 붙이고 물품 판매는 블로그를 통하지 않고 별도의 쇼핑몰 사이트를 통해 운영하는 블로거들도 있다. 살림의 지혜 등을 올리면서 많은 주부 팬을 확보한 한 파워블로거는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보면 좋은 선물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여기저기서 제안이 들어오지만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 "새집 좀 채워주세요" 블로거가 되레 협찬 요구도

'한국의 대표 와이프로거'로 불리는 A씨는 지난 4월 한 포털사이트와 전자업체가 주최한 '새내기 블로거 아카데미'에서 "1세대 블로그는 일기장, 2세대 블로그는 콘텐츠 생산 장소, 3세대 블로그는 광고의 장, 4세대 블로그는 공동구매를 하는 상점"이라고 강연했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블로깅을 하나의 사업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실제로 A씨는 2008년 6월부터 최근 베비로즈 사태를 계기로 공동구매를 중단하기까지 무려 220건의 공동구매를 진행했으며, 지난달에는 블로그 개설 7주년을 기념해 직원도 고용하고 '공구(공동구매) 작업실'까지 열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A씨의 수입은 과연 얼마나 될 까. 파워블로거 베비로즈의 경우 오존살균기 '깨끄미' 공동구매를 장기간 진행하면서 블로그 이웃들에게 대당 36만원에 팔고 7만원씩, 총 2억1,000만원에 이르는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베비로즈의 수입을 감안하면, A씨도 블로깅을 통해 상당한 돈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이와 관련, 자신의 블로그에 "제품 하나를 공동구매하면 20%의 수수료를 받고 수익이 억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라면서 자신이 받는 수수료는 4~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A씨와 계약했던 한 입소문마케팅 업체의 전직 직원에 따르면 A씨는 공동구매를 시작하지 않았던 2005~2006년에는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를 홍보해 주는 대가로 한 건당 연 1,000만~2,000만원을 월 지급식으로 받으며 무료해외여행을 가는 식으로 계약을 맺었지만, 2008년 6월부터 공동구매를 시작해 상당한 수수료 수입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베비로즈, A씨와 더불어 네이버의 '3대 와이프로거'로 불리는 B씨 역시 수많은 공동구매를 진행해 왔으나 최근 베비로즈 사태 이후 비판이 빗발치자 블로그를 중단했다.

하지만 일부 파워블로거는 아직도 블로그를 통해 공동구매를 진행하거나 체험을 가장한 광고 글을 활발하게 게재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업체로부터 요청을 받기 전에 먼저 제안을 하기도 한다. 한 입소문마케팅 업체 관계자는 "한 파워블로거는 50평형 새 집에 이사오면서 벽지와 바닥재, 가구는 물론 가전제품까지 모두 협찬 물품으로 채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파워블로거에 업체가 광고나 협찬 제안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일부 와이프로거는 업체에 먼저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그 블로거가 이벤트를 하거나 글을 쓰면 수많은 주부 팬들이 읽고 참여하기 때문에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유명 생활용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수년 전 한 와이프로거와 홍보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유명해지자 지나치게 큰 액수를 요구하고 조건도 까다로워져 파워블로거 마케팅을 중단했다"면서 "현재는 간단한 샘플을 제공하고 리뷰와 개선 의견 등을 받는 자발적인 주부 서포터즈를 모집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