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관악구에 시간당 110㎜가 넘는 큰 비가 내리는 등 26일부터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 호우로 인한 전례 없는 피해가 속출하자 서울시는 100년 빈도의 폭우 탓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추석연휴 기간에도 시간당 100㎜ 가까운 호우로 광화문 일대가 물에 잠겼다. 이 때도 역시 100년에 한 번 내릴까 말까 한 규모라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100년 만의 폭우'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이상기후가 일상이 됐기 때문에 재난관리 대책도 근본적으로 새로 짜야 한다는 것이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시간당 3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날은 1971~80년 12일에서 2001~2010년 37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빈도 개념은 없애고 최근 강우 규모에 따라 새로운 방재설계를 해야 한다"며 "시간당 100㎜ 정도의 폭우까지는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의 정책은 그동안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디자인 서울'을 내세우며 겉모습을 치장하면서도 지형과 기후변화에 걸맞은 수해방지 시설을 갖추는 데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수해를 입은 광화문과 강남 모두 저지대여서 물이 몰릴 수밖에 없다. 광화문 광장 일대는 인근 북악산 인왕산보다 지대가 낮아 비가 내리면 물이 집중된다. 피해가 집중된 강남역과 대치역 주변도 강남 지역에서 낮은 지대에 속한다. 문제는 기후변화에 따라 매년 강수량은 급증하는데 이들 지역의 하수 시설은 과거기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광화문 일대의 경우 10년 빈도 폭우(시간당 74.8㎜)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하수관이 설치돼 있다. 시 도시안전본부는 지난 2월 50년 빈도의 폭우(시간당 102㎜)도 감당할 수 있도록 2013년까지 320억원을 투입해 지름 3.5m 이상, 길이 2㎞의 대심도 배수터널을 설치해 광화문 광장을 거치지 않고 청계천으로 직접 배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기본계획만 수립 중이다. 사전 공사인 하수관거 확장공사도 당초 6월말까지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28일 현재 공정률 70%에 그치고 있다.
강남의 경우도 시설 미비로 도로가 강이 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강남 일대에 내린 비는 '하수관→서초빗물펌프장→반포천→반포빗물펌프장→한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일부 대형 하수관거는 서초빗물펌프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반포천으로 빠진다. 반포천은 폭이 좁아서 이번 집중호우와 같이 강수량이 급증하면 빗물이 잘 빠지지 않아 역류의 원인이 된다. 한강변까지 바로 이어지는 배수터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시는 아직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다.
도심의 녹지가 감소한 것도 수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발표한 '기후변화에 대응한 서울시 물관리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의 연간 강수량 중 지표면으로 유출되는 비율이 1960년대에는 9%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에는 48%로 높아졌다. 녹지는 줄고 도로포장률은 높아져 빗물이 땅에 스며들지 못하고 그대로 지표면으로 흘러 침수피해가 가중된다는 것이다. 조원철 교수는 "물이 집중되는 광화문의 경우 분산이 중요한데도 돌길로 포장한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며 하수관로를 청계천으로 집중시켰다"고 말했다. 강남 지역도 가로수를 뽑고 '미디어 폴'을 심은 데다 종전보다 넓은 보도블록을 깔면서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불투수 면적이 늘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과 교수는 "100년 만의 폭우라며 천재라고 말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하수관 확충 등 수방사업이 디자인 사업 같은 것보다는 생색이 안 나겠지만 필요한 분야에 먼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방재연구소 이종설 박사는 "하수관거의 용량을 키우는 등 방재시스템을 새로 설계하는 데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공사에 따른 불편이 생긴다"며 "현재 필요한 하수관거의 용량은 얼마인지, 또 투입 가능한 예산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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