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 '그을린 사랑'이 지난 25일 관객 1만명 고지를 넘어섰다. 개봉(21일) 일주일이 채 안 돼 여름 대작들 틈바구니 속에서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의 흥행 바로미터인 1만 관객 성과를 올린 것이다. 26일까지 이 영화를 본 관객은 1만2,348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다. 캐나다 영화인 '그을린 사랑'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첫 소개된 뒤 호평을 받아왔다. 한 쌍둥이 남매가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한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계는 "예술영화 팬들의 지지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처럼 빠른 흥행 속도는 놀랍다"는 반응이다. 수입사인 티캐스트는 관객들의 호응에 발맞춰 상영관 수를 더 늘릴 계획이다.
흥행 반란은 '그을린 사랑'만이 아니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덴마크영화 '인 어 베러 월드'는 26일까지 4만1,906명을 불러모으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에 관객 4만명은 상업영화의 900만 관객에 맞먹는 것으로 여겨지는 꿈의 수치다. '인 어 베러 월드'의 수입사 AT9㈜씨에이엔의 정상진 대표는 "상업영화 1,000만명에 해당하는 5만 관객 달성도 조심스럽게 점쳐본다"고 말했다.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폭력의 근원을 탐색하는 '인 어 베러 월드'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과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각각 거머쥔 수작이다.
'그을린 사랑'과 '인 어 베러 월드'의 흥행 성공은 영화의 완성도만으론 설명되진 않는다. 여름 성수기 대작 영화 개봉이라는 극장 환경이 변수로 작용했다. 박지예 티캐스트 극장영화사업팀장은 "'그을린 사랑' 같은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에겐 선택의 폭이 좁은 상황이다. 전략적으로 성수기에 개봉한 전략이 맞아떨어진 듯하다"고 밝혔다. 대작들 봇물 속에서 예술영화의 희소성이 높아져 되려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분석이다. 고정적인 예술영화 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악조건을 역이용해 흥행 환경을 만들어낸 셈이다. 정상진 대표도 "관객들은 팝콘무비만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난 그런 영화 안 봐' 하는 관객들의 반발 심리가 특정 예술영화로의 쏠림 현상으로 이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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