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과 27일 이틀간 서울에 쏟아진 폭우의 최대피해지역은 서초ㆍ강남이었다. 계획도시로 건설된 서초ㆍ강남 지역은 산사태에다 정전, 통신두절, 방송중단, 아파트 단지와 도로, 지하철 침수 등 도시기능이 완전 마비됐다. 그 동안 계획도시에 부자동네인 서초ㆍ강남구는 대부분 고지대인데다 배수시설 등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게 그간의 인식. 그러나 이날 폭우는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산사태와 주요시설 침수
27일 엄청난 폭우로 오전 8시45분부터 우면산 자락이 서울 서초구 우면동과 방배동 일대로 무너져 내리면서 모두 17명이 숨지거나 매몰됐다. 산사태로 120세대 중 60세대가 한 때 고립됐던 우면동 형촌마을에서는 신세계 구학서 회장의 부인 양명숙(63)씨가 이날 자택 지하실을 살피러 내려갔다가 밀려든 흙탕물에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당시 양씨는 12개월 난 손녀를 업은 며느리, 가사도우미 여성과 함께 20~30분간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물을 바가지로 퍼내다 진전이 없자 양 여사는 며느리와 가사도우미에게 펌프 등을 가져 오라고 내보낸 뒤 계속 현장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면산 산사태로 교육방송인 EBS는 6시간여 동안 심각한 방송 차질을 빚었다. EBS 라디오 '모닝스페셜'은 이날 오전 8시 50분께 진행자가 "산사태 때문에 방송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사과하고 곧바로 음악방송으로 대체됐다. TV 프로그램은 녹화분으로 정규 방송을 송출했다. EBS 관계자는 "생방송 제작ㆍ송출 시설이 있는 우면동 방송센터 일부 스튜디오에 토사가 유입되고 가건물 형태의 세트실이 무너져 내렸다"고 밝혔다.
또 우면산에 위치한 서울시교육연수원도 이날 오전 뒷산 비탈 면이 무너지면서 토사가 흘러내려 강의실 창문이 깨지고 지하주차장이 침수됐다. 우면산 터널 요금소 출구에도 우면산 토사가 흘러내려 일대 교통이 완전 마비됐다. 인근 예술의 전당도 모든 전시장을 휴관했다. 우면산 인근 양재동 주민 백모(42)씨는 "서초구청이 지난해 태풍으로 나무들이 꺾이고 쓰러지는 문제가 생기자 큰 나무들을 잘라낸 것도 산사태의 한 요인"이라며 " 이로인해 비가 와 이미 젖어있는 흙이나 나무가 빗물을 흡수하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역 일대 삼성 사옥 인근 지역 도로는 하수 역류로 인해 급류가 흐르는 거대한 수로로 변했다. 이 일대는 이날 오전 9시15분부터 3시간 동안 SK텔레콤 휴대폰이 불통됐고 방배동 일대 1만여 가구가 정전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지하철 분당선 선릉역과 도곡역 배수시설이 쏟아지는 폭우를 감당하지 못해 선릉-수서 구간 열차가 전면 통제됐다. 대치동 은마 아파트를 둘러싼 100m내 대치역 사거리 일대 도로가 물에 잠겨 북문 한곳을 제외하고 단지로 진입하는 길이 모두 침수돼 주민들이 한 때 고립됐고 수백대의 자동차가 물에 잠겼다. 대치동 주민 김모(45)씨는 "자동차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서울 남부 관문인 사당 사거리 일대도 물에 잠겨 오전 9시께 사당역 출입이 통제됐다. 방배3동에 사는 주민 권윤정(42)씨는 "8시가 되자 남부순환도로부터 사당역까지 도로는 거센 물길이 흘러 건너갈 엄두도 못 냈다. 10년 넘게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강남지역 왜 피해 컸나
이날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서초구에는 161mm, 강남구에는 142mm의 물폭탄이 투하됐다. 같은 시간대 서울의 타 지역보다 평균 3배 이상 강수량이 많았다. 이 지역의 배수를 담당하는 대치빗물펌프장은 시간당 94mm의 강수를 감당할 수 있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욱이 많은 비로 인근 양재천, 도림천도 역류, 물이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결국 기록적인 폭우가 배출될 곳을 찾지 못해 서초ㆍ강남 일대를 계곡과 호수로 만든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해는 지형과 하천 등 여러 요건이 함께 작용하지만 기본적으로 강수량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며 "강남 지역의 시간당 강수량은 100년에 한번 나올 만한 수준이어서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이정현기자 joh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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