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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 <22> 귀차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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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 <22> 귀차니즘

입력
2011.07.2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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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장난기 가득한 한 동창생이 자기가 족집게 과외를 잘 한다며 자화자찬을 하자, 친구들이 "그렇지만 넌 인간성이 나쁘니까 애들을 망칠 거야"라고 면박을 주었다. 그때였다. 한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그 동창생에게 "야! 그러면 우리 아이 좀 가르쳐줘라" 하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 "애를 망치려고 그래?"라는 식의 농을 했지만, 그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이 이렇게 외쳤다. "내 아들 녀석이 지금처럼 사느니 차라리 범죄자라도 됐으면 좋겠어!"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기 아이는 완전한 의욕상실증 환자라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고,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어서 그저 하루 종일 방안에서 뒹굴거리기만 한다고 했다. 물론 그 아이가 나쁜 짓을 하지는 않지만, 그런 아들을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차라리 악당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요즘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해서 세상만사를 귀찮아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귀차니즘이라고 한다.

귀차니즘이란 '귀찮다'라는 형용사에 '∼주의'를 의미하는 영어인 'ism'을 덧붙여 만든 신조어로, 모든 것을 귀찮아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현상이 고착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쉬는 날만 되면 TV리모콘을 본드로 손에 붙여놓은 채 하루 종일 방안에서 굴러다니거나, 쇼핑을 귀찮아해서 여러 상품을 인터넷에서 한꺼번에 구입하는 것과 같은 가벼운 귀차니즘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뉴스도 안 보고 투표도 하지 않는 식으로 세상일에 무관심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집에만 틀어박혀 인터넷과 텔레비전에 몰두하는 폐인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심각한 귀차니즘도 있다. 이는 우울증이나 의욕상실증 같은 마음의 병을 포함하기 마련이므로 치료나 극복이 쉽지 않다.

귀차니즘에는 한국인들의 개인주의와 현실도피 성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치부하는 개인주의가 개인의 안락이나 편안함을 목표로 삼게 되면 귀차니즘이 탄생하게 된다.'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오늘은 편안히 쉬고 싶다'는 것이 이런 개인주의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힘겨운 세상살이에 지쳐가고 있는 한국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맘껏 쉬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현실도피에 빠져들면서 매사를 귀찮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귀차니즘의 주요한 원인으로 또한 우울감과 무력감을 지목할 수 있다.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가진 이들은 삶의 목표나 의욕을 상실하기 때문에 만사를 귀찮아하고 세상으로부터 후퇴해 자기 세계에 침몰하는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방과 후 바쁜 학원 일정에 맞춰서 공부기계처럼 살아가는 10대들, 실업의 공포 속에 대학문을 나서는 20대 청년들에게서 귀차니즘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최근에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귀차니즘이 퍼지고 있다.

귀차니즘은 개인에게도 손해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모든 한국인이 귀차니즘에 빠지게 되면 경제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할 것이고, 사회 전반이 활력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귀차니즘을 방지하려면 무엇보다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치료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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