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애로사항들을 고쳐주기 위해 2009년 7월 도입된 중소기업 옴부즈만 제도. 고대 로마시대 귀족들로부터 평민의 권리를 지켜주던 자리(호민관)의 취지에 맞게 이름도 기업호민관으로 지었다.
하지만 출범 2주년(23일)을 맞은 호민관은 지금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중소기업들조차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왜 있는지 모르겠다"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25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기업호민관은 출범 후 1년 동안 1,300여 건의 기업 애로사항을 발굴하거나 접수해 처리했지만 2년 차엔 처리건수가 800여건으로 격감했다.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모(35)씨는 "작년 9월에 규제개선을 건의했지만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되든 안 되든 무슨 결론을 내려줘야 할 텐데 늘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역할축소와 위상추락은 초대 호민관을 지낸 이민화(58)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이 지난해 11월 "정부가 호민관 활동에 제약을 가해 독립성이 훼손됐다"고 전격 사퇴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김문겸(55)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가 지난 3월 제2대 호민관에 위촉됐지만, 존재감은 점점 더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김 호민관은 취임 이후 지난 5월 기자간담회와 기업 이미지(CI) 선포식 외엔 언론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호민관 업무실적에 대한 흔한 보도자료조차 제대로 나온 게 없을 정도. 이에 대해 호민관실 관계자는 "김 호민관이 취임한 뒤 450건의 애로사항을 처리했으며 전국을 돌며 지역간담회 등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중소업계에선 "전혀 체감할 수 없다"는 반응 일색이다.
중소기업 권익보호기구라는 기대감 속에 출범한 호민관이 2년 만에 있는 지 없는지조차 모를 조직으로 전락한 건 기본적으로 관료주의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현재 호민관실은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접수된 애로사항을 자체 분석한 뒤 해당부처에 검토의견을 보내는데, 각 부처가 힘도 없는 호민관실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소관부처가 거부할 경우 기나긴 협의과정이 시작되고 여기서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총리 주재 중소기업 애로해소 대책회의로 넘어가게 되는데, 정작 총리 주재 회의는 작년 5월 이후 열린 적이 없어 수 많은 안건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호민관실 측은 "어떤 규제를 처음 만들 때에도 나름 부처의 정당한 논리가 있었기 때문에 현장을 모르는 공무원들이 그걸 쉽게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민화 전 호민관의 경우 '상생'이슈를 선점하며 목소리라도 높였지만 그가 물러나고, 특히 정운찬 전 총리가 이끄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상생문제를 주도하게 되면서 호민관 입지는 더욱 비좁아 졌다는 분석.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예산도 인력도 권한도 없는 호민관 조직이 애초 중소기업 문제를 풀기란 한계가 있었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힘을 실어주지 않는 한 호민관은 더 이상 존재이유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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