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는 윤모(54)씨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두 딸이 이제 고등학생인데, 정년이 내년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약 8,000만원의 퇴직금으로 두 딸의 대학 교육까지는 감당하겠지만, 자녀들 결혼 자금과 부부의 노후 생활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윤씨는 "창업 등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는 하겠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해 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현실을 보면 암담하다"며 "퇴직금이 떨어지면 2억6,000만원짜리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생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씨처럼 1955~63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이들이 보유 주택을 처분해 노후생활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5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베이비붐 세대 은퇴에 따른 주택시장 변화'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48~56세)는 총 688만 여명. 이들 중 약 637만명이 아직 취업상태(고용률 77.6%)에 있지만, 지난해를 시작으로 향후 7~8년 동안 본격적인 은퇴가 이어질 전망이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의 43%가 55세를 정년으로 삼고 있다"며 "60세 이상 고령층 노동인구 비중이 빠르게 감소하는 점을 감안하면, 베이비붐 세대도 퇴직에 따른 소득 감소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명예퇴직 등으로 이들 세대의 은퇴가 더 빨라질 경우, 국민연금을 수령하기까지 5~10년은 소득 공백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2010년 가계금융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가구의 평균 총자산은 3억2,995만원이며, 이 중 74.8%인 2억4,678만원이 주택 등 부동산에 묶여 있다. 예금 주식 등 금융자산과 자동차 등 기타자산은 각각 7,319만원(22.2%)과 996만원(3.0%)에 불과했다.
이런 자산 구조 하에서 은퇴로 소득이 감소하고 자녀교육비와 생활비 부담이 늘어나면 보유 주택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설명이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대부분은 '돈 들어갈 곳 투성이'인 학생들이다. 지난해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베이비붐 세대의 90% 이상은 자녀 대학교육비 및 결혼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은퇴 이후 고정 수입은 끊기지만, 부채상환 부담은 그대로 남는다. 이 역시 부동산 처분에 대한 압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 부채 규모는 5,800여 만원이다. 보고서는 베이비붐 세대 노후 준비 수단의 38.5%를 차지하는 국민연금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급속한 고령화 및 재정구조의 취약성 탓에 연금 지급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경영연구소 관계자는 "국내 주택시장의 주 수요층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자산 처분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가격은 점차 하향 안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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