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지금 하려는 것(테러)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연쇄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은 범행 직전 인터넷 토론사이트에 올린 '2083:유럽독립선언'은 무서울 정도로 확고한 신념이 넘친다. 무려 9년에 걸쳐 1,500쪽짜리 선언문을 쓰면서, 그는 끊임없이 증오의 양분을 뿌리고 정치적 확신을 벼려가며 스스로를 괴물로 키웠다. 선언문에는 중산층에서 평범하게 성장한 청년이 역사상 최악의 테러범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그 결과 형성된 비뚤어진 정치적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증오는 선언문 전체를 관통하는 큰 주제였다. 그는 "다문화주의는 지금 진행 중인 유럽 이슬람화의 뿌리와 같다"며 "마르크스적 언론 검열을 뚫으려면 좀 더 잔인한 방법을 써야만 한다"고 썼다. 또 "지금은 교황이 유럽 기독교를 수호하기 위한 저항을 시작해야 한다"며 기독교의 쇠퇴를 우려했다.
"당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면, 꼭 아이를 낳아 적당한 때가 왔을 때 그 아이들의 목숨을 희생할 수 있도록 강력히 조언한다"는 궤변, 블라디미드 푸틴 러시아 총리에 대한 존경, 심지어 "한국의 가부장제가 서유럽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이어졌다.
테러가 시작되기 불과 2시간 30분 전에 작성한 마지막 글에서는 인류의 운명을 양어깨에 짊어졌다고 여긴 그의 과대망상적 허영심도 엿볼 수 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은 7월 22일 12시 51분. 앤드류 베르빅(그의 가명), 사법기사 사령관, 유럽의 템플기사, 노르웨이의 템플기사"라고 선언문은 끝맺는다.
브레이빅의 '필생의 역작'은 곳곳에서 '지옥의 발송자 유나바머'로 불렸던 무정부주의자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문장을 베껴 쓴 흔적이 발견됐다. 버클리대 교수를 지내기도 했던 카진스키는 산업사회를 무너뜨릴 것을 주장하며 1978~95년 과학기술 종사자들에게 폭탄소포를 보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인물. 카진스키는 테러 중지를 조건으로 언론사에 자신이 쓴 선언문을 게재해달라고 요구했다. 카진스키 선언문에는 "광기 어린 세상에 만연한 징후 중 하나가 좌익사상이다. 따라서 좌익사상의 심리적 측면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얘기할 수 있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브레이빅은 좌익사상을 다문화주의로, 현대사회를 서유럽으로 바꿔 그대로 옮겨 썼다. 물론 글을 차용했다는 주석은 달지 않았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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