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23일 박의춘 북한 외무상과 만나 비핵화 회담은 남북이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북측도 공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핵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직접 협상만을 고집해 온 북한이 처음으로 남한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한 신호라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측 반응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다소 앞서가는 해석이란 분석도 있다.
남북 외교장관들은 이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석상에서 2008년 7월 싱가포르에서의 같은 회의 이후 3년 만에 만났다.
두 사람은 회의 직전 대기 장소에서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나눈 뒤 본회의장으로 함께 이동했고, 회의 중간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지난해 하노이 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당시 유명환 장관과 박 외상이 서로 외면했던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핵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를 철저히 배제해 온 북한이 이제 남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그 동안의 6자 회담은 북미가 주도하고 우린 들러리 역할을 한 측면이 있었다"며 "앞으로의 6자 회담은 남북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청와대가 24일 남북관계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지만,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에 이어 외교장관 만남까지 성사됐다는 점에서 일단 한반도의 안보 긴장도는 일정 부분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이와 함꼐 김 장관이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양자ㆍ다자 만남이 추진될 것"이라고 언급함에 따라 북미, 북일, 6자회담 등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ARF 외교장관 회의는 이날 의장성명을 채택하고 공식 폐막했다. 의장 성명에는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간 협의를 환영하고, 남북대화가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희망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앞서 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일본 외무상은 이날 3국 외교장관 회의를 열고"북한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를 포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3국은 북한의 도발적이고 호전적인 행동에 연대해 대처할 것"이란 내용의 공동 보도문을 발표했다.
발리=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