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다. 바닷가에서 '시거리'란 아름다운 말을 만났다. 친구가 가르쳐준 시거리는 밤바다 바닷물이 파란 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다. 신기했다. 황홀했다. 남쪽 바닷가 사람들은 시거리를 [시그리]로 발음한다. 시그리, 시그리 중얼거려보면 내 입속에서 파란 바닷물이 반짝반짝 빛났다.
작은 배에 잔돌을 싣고 노를 저어 바다 한복판에 나가 시거리 물수제비를 띄웠다. 그 밤배놀이를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시인이 되어 시거리에 대한 시를 쓰려고 누군가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쉽게 일본말이라고 치부해버렸다. 며칠 전 3부자가 국어학을 하는 K선배 댁에서 정담을 나누다가 시거리를 다시 물었다.
일어라는 것에 고개를 갸웃하던 선배는 아들에게 찾아보랬다. 시거리는 북한어였다. 조선말대사전에 시거리를 원생동물로 소개했다. 몸은 공모양으로 바다에 떠서 사는데 많이 모이면 물결 따라 빛을 낸다고 소개해 놓았다. 아, 그렇게 잃어버린 시거리를 찾았다. 빛이 있는 추억을 찾았다.
어린 우리는 현상으로 알았는데 그건 바다 야광충을 일컫는 말이었다. 국어대사전에도 올라있었다. 야광충의 북한말이라고, 순화된 우리말로는 밤빛벌레라고. 인터넷 어디에도 시거리를 소개하는 글이 없었다. 이젠 아니다. 오늘로 시거리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 고향바다는 오늘밤도 시거리가 빛날 것이다. 반짝반짝.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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