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볼일에 늦을 것 같아 버스는 못 타고 택시를 타고 을지로5ㆍ6가 길을 통과했다. 그때 왼편으로 웬 낯선 건물이 퍼뜩 눈에 들어왔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기사에게 외쳤다. 어, 저게 뭐예요. 무슨 건물이에요. 물었다기보다는 어떤 놀람으로 절로 외친 거였다. 그 건물 주변은 담장 대신 나무를 둘러 조경해 미니 공원 같기도 해서 금방 눈에 띄었다. 이 을지로 길에 빌딩을 짓지 않고 어쩌자고 저리 나무로 꾸몄나, 여기 땅값이 얼만데 뜬금없다 싶었다. 조성한 지 얼마 돼보이지는 않았지만 작지 않은 면적 같았다. 이 시대가 녹색환경으로 녹색소통을 희망하고 강제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참 뜻밖의 건물일세. 기사 왈, 저거 국립의료원이잖아요. 뭐라구요, 저게 국립의료원이란 말예요? 옛날의 메디컬 센터, 그 건물, 그 자리란 말예요?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택시 탄 것을, 지하철을 타지 않고 버스는 아니었지만 지상교통 이용한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로 여기를 통과했다면 저 국립중앙의료원, 옛 메디컬 센터라고 더 많이 불린 이곳이 아직도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깨끗이 지운 채였을 것이다.
이곳 길을 눈으로 보며 지나는 게 도대체 몇 십년만이란 말인가. 2호선 지하철 이용 말고는 몇 십년간 이 길을 지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대로의 변화, 거리 주변의 변화를 알 리 없었다. 언제부턴가 주택, 학교 등도 담장을 헐고 그 자리를 나무로 조성해 주민, 시민과 소통하는 건축환경으로 바꾸고 있는 걸 목격한다. 녹색의 영향, 녹색의 가치에 주목하여 공감과 소통의 열린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취지일 것이다. 행복한 환경으로 가는 여러 실천들 중의 하나라는 공감이 형성된 것이다. 좋은 일이다.
택시를 타고 통과한 짧은 시간 다음 삼십년 전의 내가 영상으로 몰려왔다. 삼십년 전 나는 메디컬 센터 뒷골목 한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얼른 밥 사먹고 이 메디컬 센터 정원에 들어 잘 손질된 꽃나무들 아래를 거닐었다. 꽃과 나무와 초록 잔디밭에 쏟아지는 햇빛에 젖으며 청춘의 어떤 아픔을 위로받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그때가 광주항쟁이 일어난 때였는데 사회 안팎은 고통과 불행으로 어두웠다.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은 연일 광주 고향으로 가족의 안부를 알고자 전화해댔지만 끝까지 불통이었다. 그런 불통의 시간에 나는 각색 명언집을 들추며 인생의 지침이 될 명언들을 다시 뽑아 새 원고로 만드는 일을 맡고 있었다. 십인십색, 백인백색의 다 옳고 바른 명언들을 옮기며 이날까지 기억에 남은 한마디는 "인생관을 파종하라"는 명언이다. 참으로 삼십년 전의 옛날이나 써먹을 성싶은 구식 냄새가 나는데, 그때의 나는 무슨 씨든지 씨를 되게 파종하고 싶어했나 보다. 그때 인생의 밭에다 씨를 잘 뿌리지 못해서 이후의 내 삶은 빈약의 연속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까마득 잊은 삼십년 전의 나를 끄집어내준, 지상교통을 이용한 덕분으로 만난 국립의료원과의 추억. 외형은 신축, 리모델링으로 바뀌었지만, 그게 거기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장소에 속한 추억이 떠올라와 놀라웠다. 하도 빠르게 변하고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풍경에 무감해져 그 장소를 바로 알아보지 못한 자신한테는 더 놀랐다. 이 놀람은 속에 파문을 남겨 지상교통 이용에 대한 실천을 굳혀야겠다고 더 마음먹게 했다. 지하세계 지하철 이용만으로는 도무지 마음을 달랠 길이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차창 유리에 가로막힌 대화겠지만 비치는 차창을 통해 움직이고 흐르는 지상 풍경을 그립고 새롭게 고전을 읽듯 읽고 싶다.
이진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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