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도종환 지음/창비 발행ㆍ132쪽ㆍ8,000원
일생을 하루에 대응시킨다면, 도종환(57)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세시를 지나 다섯시 가까이 와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한다. 정오의 태양이 뉘엿뉘엿 기우는 그 시간은 지난 낮에 대한 미련과 후회, 석양을 앞둔 두려움과 조급증이 교차할 때. '둘 다 연금도 퇴직금도 없이 견뎌야할 불안한/ 노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허전해지는 삶의 한 모서리 사리물고/ 초가을에서 깊은 가을로 돌아오는 길'('발치' 중) 같은 시간이다.
시인은 그러나 산란한 마음을 다잡으며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고맙다' 고, 또 반쯤 저문 달을 보면서도 '저물 날만 남았어도 환하다는 것이 고맙다'('하현' 중)고 노래한다.
도씨가 5년 만에 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는 치열한 정오의 삶을 보낸 이가 저무는 해를 보며 갖는 마음다짐이 각별한 시집이다. <접시꽃 당신> 으로 백만 독자를 누렸던 베스트셀러 시인이자, 교육 및 문화운동가로서 시대와 함께 했던 그는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고 돌아보고 '이제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그러나 그 영광과 상처의 발자취 모두를 소중히 돌아보며 다가올 시간 앞에서 다시 옷깃을 여민다. 접시꽃> 세시에서>
강직함과 부드러움을 아우르는 서정적 시어로 개인과 역사 모두를 껴안았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제 삶을 돌아보면서도 우리 사회의 모순 덩어리도 놓치지 않는다. '그해 여름'에선 '슬퍼하는 이는 넘쳐 났으나/ 잘못했다고 말하는 이는 없이 여름이 지나가고'라며 용산참사를 다뤘고, '카이스트'에선 '젖은 꽃잎 비에 다시 젖으며/ 수직으로 떨어져내렸다'며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에 아파한다. '우리는 겨우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며.
2008~2009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냈고 지난해에는 작가회의 내 저항의글쓰기실천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던 그는 이제 그 짐들을 벗고 충북 보은군 구인산 골짜기에서 글쓰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2년 극도로 쇠약해진 몸을 치유하기 위해 들어왔던 곳이다. 도씨는 "남은 시간도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