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시절, 그가 여자친구의 집 허름한 창고에서 인터넷 검색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까운 지인들조차 모두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 해 ‘페이지 랭크’란 수학적 알고리즘을 활용, 중요 순서대로 검색결과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내자 사람들의 시선은 180도 달라졌다. 당시 최고 검색엔진으로 통했던 야후나 알타비스타보다도 성능이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구글(Google)’로 명명된 이 서비스는 불과 2년만에 총 10억 페이지가 넘는 인터넷 인덱스(색인)를 보유하면서, 야후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검색사이트로 등극했다.
24살 나이에 수학천재였던 동갑내기 친구(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구글을 탄생시킨 이 천재는 래리 페이지(사진)였다. 회사명 ‘goole’을 ‘검색하다’는 일반동사로까지 만든 인물. 2001년 선마이크로시스템즈 최고기술책임자(CIO) 출신의 전문경영인 에릭 슈미트에게 CEO 자리를 물려줬던 그가 이제 10년 만에 돌아왔다.
복귀, 의심, 그리고 확신
“구글에 더 이상 ‘어른’의 통제는 필요 없다.”
지난 1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래리 페이지의 CEO복귀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10년 전 슈미트 회장이 CEO에 취임할 당시 페이지가 20대에 불과해 자신과 같은 ‘어른’이 필요했지만, 이젠 페이지가 직접 경영에 나서도 충분하다는 얘기였다. 슈미트는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페이지의 CEO 취임소식이 전해지자, 구글 주가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그가 천재 창업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이미 공룡기업이 되어버린 구글을 잘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시장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4월 페이지는 마침내 CEO에 취임했다. 그로부터 3개월. 페이지는 시장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깜짝 놀랄 만한 2분기 실적을 내놓았다. 매출(90억2,600만 달러)은 전년 동기에 비해 32%나 늘었고, 영업이익(28억8,100만 달러)은 사상 최대치였다. 실적발표가 나오자 구글의 주가는 529달러에서 단번에 598달러로 뛰어 올랐다. 시장이 마침내 페이지를 믿을 만한 CEO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속도전
그렇다면 지난 3개월간 페이지는 구글에서 무슨 일을 한 것일까. 그는 실적 발표회장에서 “지난 4월 CEO 자리에 오른 이후 추진해 온 핵심목표는 바로 빠른 결정, 빠른 실행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키워드는 혁신을 위한 ‘스피드 경영’ 이었던 것이다.
그는 우선 제품영역별로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조직부터 재구성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무분별하게 나눠져 있던 사업 카테고리를 ▦검색 ▦광고 ▦유튜브 ▦안드로이드(운영체제) ▦크롬(인터넷 접속 소프트웨어) ▦구글플러스(사회관계형서비스) 등 6개의 핵심 사업부로 정리했다.
아울러 불필요한 사업엔 과감히 메스를 댔다. 건강관리 정보를 제공하는 구글 헬스, 가정내 에너지 이용량을 체크해주는 구글 파워미터 등은 중단키로 결정했다. 그는 “구글 내 제품군들을 가급적 단순화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많이 진행했다”며 “아직 겉으로는 제대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진척상황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업도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급팽창에 당황한 페이지는 사회관계형서비스(SNS)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 쪽 직원들에겐 별도 성과급까지 책정했다. 그 결과 이달 초 시작한 SNS서비스인 구글플러스는 3주만에 가입자 1,800만명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머나먼 길
페이지의 목표는 구글을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로 만드는 것. 그는 “우리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의 1% 밖에 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매일 두 번씩 쓰는 칫솔 같은 구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페이지는 현재 IT비즈니스 최대 격전장인 SNS와 모바일에서 페이스북과 애플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를 위해 1분기에 이미 1,900여명의 신입사원을 뽑은 데 이어 연말까지 4,000명을 더 채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는 “장기적으로 이익을 내고 성장을 계속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미래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페이지의 복귀 3개월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다. 구글은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페이지로선 ‘숙적’ 스티브잡스(애플 CEO)를 넘어야 하고, 자신의 옛 모습을 연상시키는 27세의 마크 주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도 물리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구글어스, 스트리트뷰 등에서 불거지는 사생활 침해논란은 ‘빅 브라더 구글’이란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구글이 창업초기의 진취적이고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기업 차원을 넘어 글로벌 공룡기업이 된 구글, 그리고 페이지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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