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극심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단기간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전제로 그리스 국채를 보증하는 추가 구제금융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이 머리를 맞대고 그리스 사태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의 불안은 제법 잦아들 전망이지만 이 같은 방안이 근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여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정상들은 그리스가 디폴트 상황에 빠질 경우 유로존의 공적자금 격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최고 신용등급(AAA) 채권으로 그리스 채권을 보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상들은 EFSF가 그리스의 악성채권을 되사주는 방안(바이백)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가 타협안으로 제시했던 유로존 은행에 특별분담금을 매기는 방안은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정상들은 만기가 돌아오는 그리스 채권을, 만기가 더 긴 다른 채권으로 교환하는 방안(채권 스와프)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채권 스와프가 그리스 총부채(3,400억유로)를 900억유로 정도 줄여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 때문에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현행 채권보다 더 나쁜 조건으로 스와프가 이뤄질 경우 그리스 신용등급을 디폴트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결국 이 방안대로라면 그리스의 일시적 디폴트는 피할 수 없는데, 정상회의 직전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정상들이 그리스의 선택적 디폴트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 상태를 맞더라도 EU가 그리스 채권을 보증하기 때문에 실제 디폴트와 같은 충격이 시장에 가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그리스 디폴트가 무서운 것은 그리스가 유럽에서 차지하는 경제적인 비중이 커서가 아니라, EU가 유로존 국가의 디폴트를 허용했다는 자체가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사 그리스가 디폴트를 맞더라도 EU가 지급을 보증하면 이 같은 충격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
그러나 21일 정상회의 결과가 유로존 전체 국가의 동의를 얻는 완벽한 해법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EFSF 투입 문제는 각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민간 은행이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 온 독일, 핀란드 등의 의회가 이 방안을 통과시킬지 불투명하다. 여러 방안이 결합될 경우 각 방안이 현실화하는 데 걸릴 시간이 달라, 추가 구제금융의 효력이 즉시 나타나지 않는 문제도 있다.
게다가 그리스에 추가로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것 자체가 미봉책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부채탕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추가 구제금융을 해도 그리스는 몇 달 정도만 부도를 면할 것"이라며 "유로존이 부채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공동 지급보증 제도를 실시하거나 아예 공동 채권을 발행하는 등 각국 재정정책을 보다 밀접하게 통합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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