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넣을 때마다 화장지나 생수를 주는 주유소, 갖고 있는 포인트 카드와 신용카드를 모두 꺼내놓고 할인ㆍ적립 폭을 계산해야 하는 식당, 찍어먹지 않는 소스를 굳이 끼워 주는 치킨 가게.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당장은 덤을 받아 즐겁고 할인 받아 뿌듯하지만, 사실 이 비용은 결국 가격에 반영된다. 만약 무심코 주고받는 이 비실용적 거품을 줄이면 가격을 내릴 여력이 생기고 그만큼 물가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1일 서울 A주유소가 공개한 손익계산서를 보면, 지난 해 55억원의 매출과 1억5,000만원의 이익을 내면서 무려 1억원 가량을 판매촉진비와 광고선전비로 썼다. 판촉비 항목은 화장지나 생수 등 고객에게 사은품을 주는 부분. 이 주유소측은 "이웃 주유소가 주니까 우리도 안 줄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사은품을 전혀 주지 않고 광고선전도 줄이면 기름값을 리터당 30~50원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운전자가 직접 기름을 넣는 셀프주유소를 늘리는 것도 기름값을 낮추는 방법. 셀프주유소는 일반주유소보다 리터당 평균 60원 정도 저렴하지만, 전체 주유소의 10%도 되지 않는다. 셀프주유기 등 비용을 이유로 업주가 전환을 꺼리기 때문. 한 주유소관계자는 "셀프주유기 구입에 대해 정부지원이 있다면 고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복잡한 할인체계는 '조삼모사(朝三暮四)'마케팅이다. 패밀리 레스토랑 B사의 경우 내방고객 절반 가량이 신용카드나 이동통신카드 등을 통해 할인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할인이 아니다. 이 회사는 1인당 실제 지출금액(할인가격)을 고려해, 메뉴의 정상가격을 높게 정하고 있다. 소비자는 할인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정상가격만 높일 뿐이며 할인카드가 없는 일반 내방객은 실제보다 비싼 값으로 식사를 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지난 해 가격논란이 있었던 배달치킨도 불필요하게 끼워주는 품목을 줄이면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한 배달 치킨 프랜차이즈는 쿠폰을 없애고 포장을 줄여 가격을 낮추기도 했다.
물론 생활 속의 거품을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경품이든 쿠폰이든 할인카드 든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인 만큼, 이를 없애라고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들은 또 소비자들이 전체 가격을 내리는 것보다 "나만 할인 받았다" "덤을 받았다" 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 같은 마케팅기법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무리하게 기업들 팔을 비틀기 보다는, 생활 속 작은 거품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물가안정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연화 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은 "기업들은 마케팅을 이유로 소비자의 '조삼모사' 식 소비심리를 이용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가격으로 승부해야 한다"면서 "소비자들도 합리적 가격 정책을 취하는 기업을 적극 이용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사주지 않는 선진국형 소비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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