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노숙자들을 통칭하는 말은 '호무레스'다. 금방 눈치챘겠지만 영어 '홈리스(homeless)'의 일본식 발음이다. 과거에는 '고지키'라고 불렸는데 걸식인(乞食人ㆍ거지)의 뉘앙스가 있어 지금은 쓰지 않는다. 호무레스는 노숙은 하되, 행인에게 동냥을 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실패한 자영업자, 은퇴자들이 대부분이나 가정불화 때문에, 혹은 책임과 속박의 일상이 싫어 웬만큼 먹고 삶만한데도 거리생활을 택한 이들도 많다. 우리와 달리 노숙지는 대개 도심공원이다. 도쿄의 경우 신주쿠, 우에노공원 같은 곳이 노숙자들의 천국이다.
■ 예전 선배기자에게서 도심 지하도에서의 노숙 체험담을 들었다. 아무리 체험이어도 첫날은 누가 알아볼까 봐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더라고 했다. 그런데 불과 이삼 일만에 수치심이 완전히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그 때부터는 오히려 행인들을 빤히 쳐다보면서 관찰까지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더욱이 주변 누군가가 소주 값이라도 구해오면 함께 나눠 마시며 함부로 세상을 논하는 맛도 쏠쏠하고, 아무 신경 쓸 일 없는 삶이 너무도 편하더라고 했다. 그 선배는 "더 있다간 큰 일 나겠다"싶어 예정한 일주일을 채우기 전에 체험을 그만두었다.
■ 걸인과 노숙자처럼, 또 노숙자와 홈리스를 구별하기도 한다. 자활 의지가 있으나 정주(定住)할 능력이 안 되는 이는 홈리스, 아예 일할 의지조차 잃은 경우는 노숙자로 보는 시각이다. 어느 복지 선진국도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거리로 나온 동기와 의지 등이 저마다 천차만별인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1990년대 후반 IMF 사태 이후 피치 못하게 사회구조 밖으로 내팽개쳐진 이들이 급증했다. 거리에서 문화잡지를 파는 등 어떻게든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홈리스들은 마땅히 사회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할 대상이다.
■ 서울역이 역사 내 노숙자 300여명을 밖으로 몰아내기로 한데 대해 인권침해, 풍선효과, 물리적 충돌 등 여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올림픽 등 대형 국제행사 때마다 거리 청소하듯 노숙자들을 몰아낸 행위는 도리어 국제적으로 후진국답다는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적어도 애꿎은 행인들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공포감을 주는 행위는 치안 차원에서도 내버려둘 일은 아니다. 이런 '전과'가 있는 노숙자들만을 가려 선별조치 하는 식의 유연한 대처는 어떨까. 뭐든지 일괄적 조치는 늘 문제를 만드는 법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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